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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겠습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연속, 극>

이상우

제252호

2024.04.25

나는 2014년 부산역에서 있었던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한 발이 벗겨진 모양으로 탈을 쓰고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공연을 하였다. 부산의 소리꾼 양일동 선생과 함께 제주에서도 공연을 하였다. 나는 부산의 연극인이다. 나는 용산참사 당시 용산에서도, 밀양 송전탑 희망버스 행사에서도, 제주에서도, 광주에서도 공연을 하였다. 하지만 그뿐인 연극인이다. 정부가 나를 블랙리스트로 지목한 것도 일련의 활동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주의 놀이패 한라산을 보면, 광주의 놀이패 신명을 보면,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김태현 연출을 보면, 마음을 숨기기 바쁘다. 그 한 시절을 제외하고는 생활에 허덕이며 연극이라는 예술상품을 만들어 팔아먹고 있는 나는 정말 그저 그런 부산의 연극인이다, 라고 느껴진다.
그런 부끄러움에 내가 진행해봤던 일들을 떠올려보자면, 내가 활동하고 있는 부산 북구 지역에 ‘화명촛불’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1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촛불을 켜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란리본을 나누며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이들 옆에 선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부산 북구에서 어린이극단 소풍, 청소년극단 별숲, 시민극단 감동진, 실버극단 청춘은봄을 지원하며 함께 연극공동체 온을 설립하였다. 이들과 함께 만든 감동진연극제(감동진은 부산 구포지역의 옛 지명이다)에서 2021년 ‘화명촛불’에 선물을 하는 마음과 부산시민들에게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을 알리고자 <기억여행>을 초청공연하였다. 그렇게 이 극단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연극공동체 온에, 화명촛불에, 부산시민들에게 준 울림은 3년이 지났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24년 ‘4월 연극제’ 참가 신청 공모 소식을 접했다. 극단 해풍이 신청을 하였고 안산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4월 5일, 6일 이틀의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은 모두 부산으로 떠났다. 나는 안산에 남았다. 7일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연속, 극>을 보기 위해서였다.

<연속, 극>의 공연 사진. 김도현 배우가 동수와 함께했던 게임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수풀을 뒤집어쓴 형체와 맞서 대결하고 있는 세 배우. 모두 망토를 두르고 손에는 화살과 방패 등을 들고 있다.

7일 아침이 되었다. 날이 푸르다. 꽃들이 흐드러지고 공기도 시원하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을 찾았다. 14년 전 전국민족극한마당이라는 축제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안산에 약 두어 달을 머물렀던 적이 있고 이곳 역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익숙한 곳이었다. 우리 극단의 공연도 끝났고, 날이 좋아 홀가분하고 상쾌하다.
공연장으로 들어간다. 공연이 시작된다. 3년 전 뵈었던 그 배우님들이다. 10년이 흘렀고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연극이 되어 흘러간다. 나는 경상도 남자다. 슬프지 않다는 자기암시를 한다.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일곱 개의 에피소드는 작가의 재치일까, 연출의 재치일까, 연습을 하며 나온 배우들의 애드리브에서 시작된 대사일까, 웃음을 자아낸다. 나는 김태현 연출가를 알고 있기에 중간중간 그를 흉내 내는 장면에서 제일 크게 소리를 내며 웃었는데, 나만 웃었다. 옆자리에 앉은 관객은 첫 에피소드부터 눈물을 연신 닦고 있다.

그랬구나. 10년간 그랬구나. 아이들을 생각하게 한 지난 공연 <장기자랑>, 과거로 돌아가 보는 <기억여행>, 이번 작품은 그 지난 시간 동안 우리 엄마들 마음이 이랬구나, 하고 이해해보게 하는 공연이었다. 가족, 지금 남아있는 가족, 그리고 지금 기억 속에서 함께 하고 있는 가족, 그리고 나, 나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내 목에서 “컥” 소리가 나왔다. 등장인물이 실제 자신인 연극, 연극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작년 나의 제자 중 최고령 제자는 91살이었다. 일제강점기 전라도 나주의 산골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생을 누구보다 파란만장하고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최고령인 나이 덕분에 많은 곳에서 주목을 받았고 그녀는 한 방송국의 요청으로 인터뷰1)를 했다. 그 인터뷰 말미에 있었던 “이 질긴 목숨은 왜 빨리 죽지도 않나… 하는 인생이었는데, 연극을 하고서 이제야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내용이 오버랩된다.
김도현 배우님의 이야기, 김명임 배우님의 이야기는 아이와의 추억을 말한다. 아주 평범한, 그러나 이제는 특별한 이야기. 나의 작품 <포빅타운>처럼 일상을 다룬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제 함께 할 수 없는 일상이기에 공연의 장면은 보석 같은 소중함을 가지고 있다. 엄마가 연극을 하며 살아왔기에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세 번째 최지영 배우님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니가 다른 산재 희생자를 돕는 김용균재단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처럼, 그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면서 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위해 편지를 쓴다. 다른 누구의 위로보다 큰 위로이고 진심을 담은 위로였다. 잠시 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마음이 떠올라 다시 눈물 참기에 들어간다. 암전이다… 천정을 보며 눈물을 찍어낸다. 네 번째 박유신 배우님의 이야기는 아이에게 들려주었을, 아니 지금도 들려주고 싶은 엄마 아빠의 연애 이야기, 사랑 이야기, 딸에게 들려주고픈 그 이야기다. 또 암전이다. 유쾌한 이야기였는데, 안 울어도 되는데… 눈물, 결국 흐르게 두었다.

<연속, 극>의 공연 사진.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손에 큐카드를 든 이미경 배우가 스탠딩 의자에 앉아 있다. 그 옆으로 보면대와 마이크가 놓여 있다. 밝은 조명이 배우에게 쏟아진다.

조명이 켜지자 눈앞이 희뿌연데 이 희뿌연 건… 무대 가운데 가수가 있고 가수를 위한 조명인가 했는데 눈물 때문이다. 이건 뭔가 타이밍이 안 맞다. 다른 관객은 노래에 박수를 하고 있는데 나는 눈물을 닦고 있다. 이미경 배우님의 이 이야기는 꿈에 대한 것이었다. 다시 꿈이 생긴 엄마를 보면서 부산에서 올라온 물개 한 마리가 어헝어헝 소리를 내면서 박수를 하고 있었다. ‘태양처럼’은 이미경 배우님의 예명이다. 머리 위에 있던 탑 조명 하나, 태양 같은 아들이 엄마를 비추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오늘은 소극장을 비추었지만, 이미경 배우님의 작은 노래 하나, 짧은 독백 하나가 많은 이들을 어루만질 것은 틀림없다. 나부터도, 마음에 흐르던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 촛농이 되어 쌓이고 있었다.
여섯 번째 박혜영 배우님 이야기의 마지막은 포스터에 나온 장면이었다. 가족의 이야기, 가족사진을 찍는 이야기, 셋째의 사고 이후 돌보지 못한 첫째, 둘째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펼쳐졌다. “그래, 저랬겠다”. 엄마는 극을 통해 두 딸에게 용서를 빌고 있다. 두 딸은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함께 한다. 가족이다. 그래서 4.16‘엄마’극단이 아니라 4.16가족극단이겠지. 아마도 엄마들의 이 활동은 가족들에게, 4.16재단의 모든 가족들에게 응원을 받고 있을 것이다. 슬픔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는 없겠지만 터널이 넓어져 연대하고 동행하고 함께하고 또 힘을 주고 힘을 받는 여섯 번째 작품. 그래 나도 지치지 말자, 잊지 말자, 그 터널 안에 나도 함께 있자,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웃으면 함께 웃고 그들이 눈물 흘리면 함께 흘리고 그들이 싸우면 함께 싸우고 그들이 행복하면 내 것인 양 행복해하고 싶다.

<연속, 극>의 공연 사진. 청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은 배우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다. 직사각형 큐빅에 앉은 두 배우는 긴 머리 소녀 그림이 들어 있는 액자를 가운데 둔 채다. 그 뒤로 세 배우가 정면을 보고 있다. 어둠 속에 그들을 향해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얹어 촬영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배우가 있다.

그러던 차에 일곱 번째 이야기가 흘러간다. 김순덕 배우님의 이야기, 김순덕 배우님은 생존 학생의 어머니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아파한다.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이 지나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엄마가 노란리본과 함께 한 지난 날들을 되돌아본다. 공감하고 공감한다. 관객은 그의 지난 일 돌아보기가 앞날의 맹세임을 말하지 않아도 다 느끼고 있다. 이 작품에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공연이 끝나고 부어있는 눈은 모두가 똑같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끝나자 김태현 연출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연극인 김태현, 그들의 아픔 옆에 서서 기둥처럼 버티고 선 거인, 그가 최지영 배우님과 어깨동무를 하고선 무대를 빠져나간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내내 ‘태양처럼’ 배우가 생각이 나는데, 맑은 날씨는 온통 물기를 머금고 있는 느낌이다.

4월 10일 부산, 부산역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문화제를 열었다. 나는 부산시민과 함께 대형 노란리본 만들기 퍼포먼스2)를 연출하였다. 대형이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3세 아기부터 84세 어르신까지 노란 천을 잡고 걸어 나와 함께 리본을 만들었다. 앞서 말했지만, 부산에는 10년째 매주 목요일 촛불을 들고 세월호 추모집회를 열고 있는 ‘화명촛불’이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이 되는 그날까지 꺼지지 않을 그 촛불에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내 삶의 동행 (물론 그들은 모르겠지만),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배우님들께 받은 심지를 흘러내린 촛농 깊숙이 꽂아 넣는다. 감명, 감동이라는 단어가 모자라게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겠습니다”.

<연속, 극>의 공연 사진.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최지영 배우가 한 손에 매듭공예로 만든 노란 나비를 들고 있다. 그에게 밝은 조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뒤쪽 어둠 속에는 검은 옷을 입은 또 다른 배우가 다섯 개의 노란 종이 나비를 들고 있다.

[사진 제공: 4월 연극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연속, 극>
  • 일자 2024.4.6 ~ 4.7
  • 장소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 소극장
  • 류성, 변효진 연출 김태현 출연 김도현, 김명임, 김순덕, 박유신, 박혜영, 이미경, 최지영 주최 4.16재단 실행 Culture75 지원 해양수산부
  • 관련정보 https://416cherish.modoo.at/?link=c6wt81lx
  1. ‘91세 신인배우, 이화자’, <대담한 사람들>, KBS, 2024. 2. 13.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1-0228&program_id=PS-2024009547-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10§ion_code=05
  2. 양보원, 「부산 곳곳 희생자 기억 ‘추모 물결’ 이어져」, 『부산일보』, 2024.4.15.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041518262859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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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이상우
부산 극단해풍 대표. 부산 북구 연극공동체 온 설립(어린이극단 소풍, 청소년극단 별숲, 시민극단 감동진, 실버극단 청춘은봄, 극단 해풍). 감성가족댄스극 <포빅타운> 외 다수 작품 극작, 연출, 출연,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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