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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켤레 안전화로 남은 사내

극단 코끼리만보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

이의자

제252호

2024.04.25

극단 코끼리만보의 신작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Undocumented Oedipus)>(이하 <오이디푸스>)는 신들의 땅 콜로노스로 향하는 오이디푸스의 험난한 여정의 시공간을 확장해 미등록(undocumented) 체류자1)로 떠도는 동시대 이방인들을 무대로 불러 세운다. 이들이 입은‘FOREIGNER’가 박힌 체육복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이유로 난민을 선택한 각기 다른 원인을 지우고 이들 모두를 익명성에 가두는 낙인인 동시에, 난민 수용에 인색한 한국 사회2)의 배타적 시선을 상징한다. 초록색 운동복을 입은 ‘오이디푸스’들이 앞다투어 달리는 장면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199번 참가자 알리 압둘을 떠올리게 한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잘리고도 치료비와 6개월 치 월급을 떼인 알리3) 역시 미등록 체류자 신분이다.

미등록 체류자 신분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현실에서의 알리처럼, 무대에는 다양한 이유와 사연으로 불법 체류자가 된 ‘오이디푸스’들이 등장한다. 비자를 받고 입국했음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늙은 오이디푸스에게 허락된 생활 반경은 컨테이너에서 공장까지 여덟 걸음이 전부다. 오이디푸스는 낮에는 단속을 피해야 한다는 구실로 밤부터 새벽까지 혼자 철야 근무를 도맡는다. 추방과 산재의 경계 사이에서 용케 떨어지지 않고 버텼지만,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조심스럽고 노련한 오이디푸스도 추방당할 운명을 비껴가지 못한다.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의 공연 사진. 바닥에 검은 격자무늬가 그려진 무대 위에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여섯 명의 인물이 서 있다. 무대 중앙에 아무런 내용도 적히지 않은 흰 피켓을 들고 선 인물은 어두운 회색빛 셔츠 위에 초록색 트레이닝 재킷을 입고 목에는 후드가 달린 목도리를 둘렀다. 무대 앞 오른쪽에 선 인물은 회색 셔츠와 검은 바지 위에 초록색 트레이닝 재킷과 목도리를 맨 채, 한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바닥을 응시한다. 그 밖의 인물들은 모두 푸른색 옷이나 초록색 트레이닝 재킷을 입은 채 등을 돌리고 서 있다.

불법 체류자 단속에 걸린 오이디푸스들이 외국인 보호소에서 화재 훈련을 받는다. 무대 삼면에 쇠창살을 두르고 바닥에 바둑판처럼 구역을 나눈 무대는 2007년 ‘여수 외국인보호소 참사’ 화재 현장의 도면과 흡사하다. 당시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내 외국인보호소 화재에서는 구금 관리 중이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난민 신청자 55명 가운데 10명이 죽었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외국인의 도주를 우려해 이중 잠금장치를 해제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에 따라 거주 자격이 없는 외국인을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무기한 구금이 가능한 데 따른 조치였다.

국가폭력으로 조국을 떠나 도착한 콜로노스에서 난민 신청을 거부당하고 무기한 송환을 기다리다가 몸이 타들어 가는 사고를 당한 오이디푸스 앞에 그의 딸이자 여동생인 안티고네가 서 있다. 안티고네는 온몸을 붕대로 두른 아비이자 오빠였던 몸뚱이를 보며, 붕대처럼 피부가 순백색이었다면 그를 난민으로 받아주지 않았을까 하고 부질없는 상상을 한다. 오이디푸스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줄도 모르는 누군가가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오지 않는 병원비 청구서를 건넨다. 과거 안티고네가 들에서 썩어가는 폴리네이케스에게 흙 한 줌을 뿌려주기 위해 목숨을 걸었듯이, 이 시대 안티고네들 역시 고름이 밴 오이디푸스들의 붕대를 하얀 새것으로 갈기 위해 뭐든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의 공연 사진. 무대 가운데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갈색 안전화를 신은 인물이 쪼그리고 앉아 겨우 고개를 가눈 채 잠들어 있다. 왼편에 쪼그려 몸을 낮춘 인물이 그를 바라본다. 오른편에는 대걸레를 어깨에 걸치고 쪼그려 앉아 잠든 인물이 있다. 무대 왼편 앞쪽으로 초록색 배변통이 놓여 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가 유품처럼 남긴 안전화를 발견한다. 녹아내린 아비의 연한 피부와 다르게 앞코에 쇠를 덧댄 신발은 아이기스4)처럼 무겁고 단단하다. 신들의 땅 콜로노스에서 양성의 저주를 풀고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병실 바닥을 닦는 청소부와 대소변을 받는 간병인으로 살아가는 티레시아스5)들이 다가와 안티고네에게 경고한다. “신을 벗어라.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네 아비처럼 너도 일을 해서 돈을 손에 쥐는 순간 신은 운명의 족쇄가 되어 널 추방하거나 네 아비처럼 영원히 가둘 것6)이다.”

오이디푸스들이 죽은 뒤, 딸이자 여동생이며 아내이자 어머니인 안티고네들은 자신이 ‘불법체류자 오이디푸스’라고 외친다. 오이디푸스들이 떠난 자리, 조금 더 낡은 안전화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녹아내린 오이디푸스가 떠난 병실 빈자리는 산재로 몸 일부가 잘려 나간 오이디푸스가 채울지 모른다. 주위를 맴도는 티레시아스들의 예언은 또다시 반복된다. 시공간을 특정 짓지 않은 수많은 오이디푸스들은 결국 외국인보호소 무대 세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막 뒤로 사라진다. 콜로노스에서 쫓겨나거나 박제당한 오이디푸스들의 비극이 우로보로스7)처럼 맞물리며 ‘괴물B’8)가 산재로 잘린, 피부색이 다른 손가락의 주인을 찾아 병원 근처를 서성거린다.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의 공연 사진. 여섯 명의 인물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앞뒤로 모여 선 채 두 손을 앞쪽으로 뻗어 춤을 춘다. 그들의 뒤쪽에서 밝은 조명이 쏟아져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진 제공: 극단 코끼리만보 / 촬영: 김솔]

극단 코끼리만보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
  • 일자 2024.4.13 ~ 4.21
  •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한현주 연출 손원정 출연 윤현길, 김은정, 문성복, 조성현, 최지혜, 베튤(ZUNBUL BETUL) 무대 Shine-od 조명 김형연 음악 김태결 의상 이명아 분장 장경숙 영상 강경호 움직임 류정문 액팅코치 이영주 그래픽디자인 오브오브젝트 사진 김솔 무대감독 김여준 조연출 이해인 무대감독보 김태리 조명오퍼 민경현 음향오퍼 김은우 홍보 고한비 프로듀서 권연순 주최·주관 극단 코끼리만보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K아트플래닛
  •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8055
  1. 체류 기간을 초과했다는 ‘단순 위반’ 사실만으로 인간을 불법 행위자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에서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체류자’로 불러야 한다.
  2. 유엔난민기구(UNHCR) 기준 한국의 난민 인정률(2010∼2020)은 1.3%로, 주요 20개국(G20) 중 꼴찌 수준이다.
  3. 산재 외국인 노동자는 2018년 7,061명에서 2019년 7,315명, 2020년에는 7,363명으로 늘었다. 오세중, 「공장서 손가락 다친 ‘오징어게임’ 알리...현실에선 매해 7000명」, 『머니투데이』 2021.10.19. 참조.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01414143766971.
  4. 그리스 신화 속 염소가죽으로 만든 전설의 방패.
  5.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알려준 예언자, 남성이었으나 신의 저주를 받아 여성으로 산 양성적 존재.
  6. 2023년 3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이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며, 2025년 5월31일까지 법 개정을 요구하는 헌법 불일치 결정을 내렸다.
  7.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수. 용 혹은 뱀의 형상을 한 생물로, 자신을 꼬리부터 먹어치우는 동시에 재생을 끝없이 반복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8. 극단 코끼리만보가 2023년 ‘사회적 재난과 몸’, 산재를 주제로 올린 연작 <괴물B>의 인물. 2023.10.7 ~ 10.15,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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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자

이의자
연극 <산재일기>(23.04)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이 의자는 산재 앞에 누구도 제3자일 수 없다는 경고인 동시에 관객의 시선이 관습에 머물지 말라는 의도라고 봤다. 연극이 동사라면 ‘이 의자’는 무대에서 말하는 순간 ‘잇자’가 될 수도 있다. gubos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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