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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바디바디 프라블럼

프로젝트 하자 <커튼>

심세연

제252호

2024.04.25

오늘은 침샘이라든가 눈물샘이라든가 얼굴에 있는 액체를 만드는 기관이 싫다. 매일 적어도 한 군데씩 몸이 고장 났다는 것을 느낀다. 어제는 식은땀이 나면서 시야 가장자리가 캄캄해지고 쓰러질 뻔했다. 지하철에서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때 뭐라고 말하면서 부탁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얼마 전에는 토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토 직전에는 침샘이 엄청난 양의 액체를 뱉어낸다는 것을 (아마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에 대해 계속 계속 생각한다. 편두통, 미주신경성 실신, 기능성 소화장애,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등등. 분명 몸과 마음은 따로 있는 것 같긴 한데 둘이 왜 이렇게 많은 상호작용 같은 걸 하는지 모르겠다. 몸이 싫었다. 현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성가셨다. 어떤 병들은 증상만 완화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병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마음도 싫었다. 잠자고 밥 먹을 수 있는 물리적인 집이 있으면 나는 최대한의 이완을 경험할 수 있어야만 한다.

<커튼>의 공연 사진. 블랙박스형 무대를 촬영한 사진이다. 무대 중앙 뒤편에 약간 기울어진 흰색 커튼이 걸려 있고, 흰색 반소매 상의와 검은색 바지를 입은 단발머리의 수정이 오른손으로 커튼을 쓸며 걷는다. 커튼의 좌우와 멀리 떨어진 앞쪽에 각각 높이와 크기가 다른 흰색 박스가 하나씩 비스듬히 놓여있다. 박스는 반투명한 아크릴로 만들어졌으며, 박스 내부 하단에서 흰색 조명이 발광한다. 무대 바닥에는 열두 개의 ㅍ자 모양이 큰 원을 둘러 그려져 있고, 무대 중앙 12시와 6시 방향의 ㅍ자는 긴 흰 선으로 연결되었다.

<커튼>을 보고서는 ‘몸’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연극은 미정의 잃어버린 발톱에서 시작한다. 나는 발톱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는, 발톱이 빠진 걸까? 그렇다면 미정은 왜 아파하지 않는 건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미정은 발톱을 찾는다. 미정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싶었다. 자신의 몸이 발톱만큼 자신으로부터 ‘사라져 있는’ 것이 싫었다. 설령 미정이 발톱을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시 미정의 몸이 될 수는 없을 텐데? 라는 질문을 하면서도 발톱이라는 대상을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두는 것은 싫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몸이니까.
‘몸’에 대해 가장 많이 말할 수 있는 인물로 수정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수정은 극 중에서 언급되는 인물 중 유일하게 과거와 현재의 몸이 많이 다른 인물이다. 유도를 하던 큰 몸에서 먹지 않는 마른 몸으로. 극 중에는 잠시 수정이 자신의 컸던 몸을 좋아한다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만약 몸이 몸으로서만 존재했다면 수정은 먹지 않는 마른 몸을 가지게 되었을까? 자신의 컸던 몸을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는 있을까? 중립적인 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면, 수정의 힘듦은 없었을 것이다.
미정의 발톱과 수정의 몸무게. 둘은 사라지거나 줄어들면서, 실수로 혹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되면서, 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내가 내 손으로 다른 편 손목을 쥘 때, 내가 느끼는 피부는 손목인가 손가락인가? 내가 거울을 보고 눈을 맞추고 섰을 때, 내가 보는 것은 내 동공인가 거울에 비친 상인가? 이 둘은 모두 내 몸이 아닌 것 아닌가? 우리의 통제 안에 있는 것은 몸밖에 없다는 말을 거부하듯, 미정과 수정은 살아있다.
그다음으로는 ‘닮음’이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네 명의 인물들은 각각 둘이라는 관계만 맺는다. 셋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있기도 했지만, 셋이 하나의 공동체에서 관계 맺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둘씩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딘가 닮아있다. 미정과 수정, 수정과 의정, 의정과 나정, 나정과 미정의 생각이 닮아있다. 닮은꼴 찾기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들의 몸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커튼>의 공연 사진. 단발머리의 나정이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쪼그려 앉아 공허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나정의 뒤편으로 붉은 상의와 회색 하의를 입고 서 있는 수정의 모습이 흐릿하게 드러난다.

이번에는 나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정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미정이 하는 것, 혹은 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런 판단을 가장 강하게 내릴 수 있는 것은 나보다도 미정일 것이다. 나정과 미정은 자신이 지내는 공간의 문제와 씨름한다. 즉, 집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미정에게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고, 나정에게 그것은 나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반려로서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 생존에 필수적이고, 슬프게도 그것은 돈의 문제와 직결된다.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
한편, 의정은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을 물리적으로는 마련한 듯 보인다. 몸은 물리적인 것의 문제가 아니냐고 한정하게 되면 의정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의정이 정서상 불안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네 명의 인물 중 가장 그렇다고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의정은 마음의 집이 있어야 한다. 불안정하게 공간을 오가는 의정은 마음에 있어서도 안정된 자리를 찾지 못한다. 결혼한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의 연애 관계, 허락되지 않았지만 독점적이지 않은 연애 관계. 의정은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나정에게 갑자기 놀이공원에 가자고 제안하는 것도 정상적인 관계에서 있을 법한 일은 아니다.
나정과 의정을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 모두에게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나정은 이곳의 ‘정상’이 싫어서 다른 ‘정상’을 상정한 채 움직이는 사람이고, 의정은 이곳의 ‘정상’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다. 실제인 공간, 혹은 관계인 공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몸의 상황으로 치환하여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몸에 불편함을 겪듯 마음과 상황과 관계에도 불편함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커튼>의 공연 사진.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듯 오른손을 주먹 쥔 나정이, 마찬가지로 오른손을 들어 올린 채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미정을 지긋이 응시한다. 나정은 긴 소매 티셔츠 위에 파란색 니트 조끼를 입었으며, 미정은 노란 티셔츠 위에 보라색 체크 셔츠를 걸쳤다.

몸이 힘들다는 말은 마음이 힘들다는 말보다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미정, 수정, 의정, 나정의 나이인 젊은 사람들이라면. 병원에 가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대개 대증적이다. 몸을 말한다는 것은, 표면을 말한다는 것, 증상을 말한다는 것, 결과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표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표면과 내부가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어떤 경우에는 속살이 껍데기처럼 뒤집히는 경우도 있다. 네 명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명료하지 않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마 이 극에서 명확한 인과 관계나 권력 구도가 등장했더라면 오히려 이질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명료하지 않음으로써 이 극은 뒤엉키는 몸과 마음의 관계, 그들의 문제를 드러낸다.

[사진 ⓒ이지수]

프로젝트 하자 <커튼>
  • 일자 2024.4.5 ~ 4.14
  •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작·연출 전서아 출연 김섬, 정다함, 정대진, 정은재 기획 이시은 무대감독 이라임 무대디자인 조경훈 조명디자인 신동선 음향디자인 임서진 움직임디자인 손지민 의상디자인 김미나 그래픽디자인 사랑해 조명오퍼레이터 강윤지 음향오퍼레이터 박은호 진행 이원빈 사진촬영 이지수 주최·주관 전서아 (프로젝트 하자)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8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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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연

심세연
문학과 연극을 포함하는 예술 텍스트에 관심이 있다. celbb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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