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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골령골 학살에 대해 연극하기, 싸우기

마당극패 우금치 <적벽대전>

김지수

제257호

2024.07.11

대전對戰.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싸운다. 싸움은 타인을 전제한다. 왼쪽의 존재는 오른쪽이 있기 때문이며, 아래는 위가 있기에 성립되고, 타자가 있어 내가 있다. 문화적으로 이들에게 부여된 우열의 관계는 의도적으로 전복하지 않고서야 무너지지 않을 만큼 공고하다. 집합표상을 중시한 뒤르켐학파인 로베르 에르츠는 “왼손잡이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위반으로서, 당사자는 비웃음을 사고 공공연하게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1)고 말했다. 그렇기에 왼쪽은 언제나 코호트(cohort)의 외부에서 오른쪽을 향해 싸운다.
2020년 무렵부터 대전大田 골령골 학살에 대한 유해발굴이 본격화되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예술작품들이 다수 발표되었다.2) 마당극패 우금치의 연극 <적벽대전>(2020)이 그 중 하나였고, 2024년 동명의 공연이 6월 19일부터 30일까지 별별마당 우금치 관용극장에서 재공연되었다.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사건 제74주기 합동위령제가 있던 날, <적벽대전>의 객석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고요한 평야도시 대전에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내려는 숱한 사람들이 있(었)다.

적벽(赤壁,Cliff)과 대전(大田)

공연장 로비에는 까만 이젤에 영정사진을 연상시키는 캐스팅보드가 줄지어 놓여있다. 배우들의 밝은 얼굴과 대조되는 영정사진의 음울한 습성은 객석에 도달해서도 여전히 느껴진다. 무대 깊은 쪽에 있는 돌계단,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린 탈, 무대 양옆의 비탈길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 형상의 인형, 상·하수에 위치한 연주자들.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블랙박스 극장에서 보이는 것들이다. 수직(적벽赤壁)과 수평(대전大田)의 이미지로 낙차와 대립을 보여주는 무대구성은 불안한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공연이 시작되면 노년의 배우가 아이의 형상을 한 인형을 각각 들고 자신의 유년시절을 연기한다. 70년도 더 지나 이미 나이 들어버린 유족은 인형을 경유해 과거로 관객들을 데려간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사라지기 직전과 지금 현재 사이의 시간에는 오직 침묵만이 있다. <적벽대전>은 동떨어진, 절벽 위와 아래의 시간을 이어 붙이는 방법으로써 연극을 시도한다.

<적벽대전>의 공연 사진. 일곱 명의 일반 시민 분장을 한 인물들이 무대 위에 모여 있다. 가장 오른쪽의 인물은 객석을 약간 등진 채 서있고, 그 옆의 인물은 무릎을 바닥에 댄 채 몸을 일으켜 활짝 편 양손을 들어올려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나머지 인물들은 바닥에 앉아 말하는 인물을 바라본다. 모두 얼굴에 검은 흙칠을 했다. 무대 뒤편에는 두 단의 돌계단이 있는데 계단 가운데 즈음에 여러 개의 얼굴을 그려 넣어 반원형의 모양을 만들었다.

‘순진한 인민 그리기’가 놓친 것

<적벽대전>에서 억울하게 죽은 망자들은 ‘서천꽃밭’으로 가기 위해 분투하지만 슬픔, 원망, 분노, 고통 등으로 인해 자꾸만 실패한다. 이때 무대에 주렁주렁 달린 탈과 망자들이 쓴 탈은 공간 및 신체와 결합하여 의미를 창출해낸다. 얼굴을 가린 채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 망자들은 수천 명의 피학살자를 상징한다. 살아있으면서 죽은 것, 살지 못하는 것, 그래서 죽지도 못하는 것인 이 망자와 탈은 한편으로 견고한 뼈로 보이기도 한다. 마구잡이로 섞인 망자들의 형상3)은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평범한 골상으로 연결된다.
인물들의 천진성, 그러니까 결백함을 강화하는 연극의 요소는 바로 음악이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은 ‘순진한 시골 사람’을 강조하는 듯 단순한 선율의 동요로 구성되어 있다. 평균율을 중심으로 한 주제선율 중심의 동요란 (노스텔지어적 관념 속에서) 익숙한 사람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표현하는 장치로써 기능하고자 한다. 더불어 ‘오른손-적 음악’인 동요에 애써 국악기를 삽입하기보다 전적으로 서양악기를 사용하면서 마당극의 문법에서 이탈한다. 다만 이러한 시도에 있어 우려되는 점은 캐릭터의 입체성과 개별성을 모조리 거세하고 국민국가의 희생양 면모만을 강조하여 사건 전달 이외의 다른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있다. 욕심을 덜고 골령골 사건에 대해 진술하고자 한 마당극패 우금치 만의 선택과 집중의 결과지만, 희생자들을 진공의 상태로 만들어 우리로부터 되려 격리하여, 생생하게 ‘살아있지 못한’ 망자로 보이게끔 했다.

<적벽대전>의 공연 사진. 검은 가죽점퍼에 베레모를 착용하고 오른손에 미국국기를 든 인물이 오른 팔을 앞으로 힘차게 뻗으며 걷는다. 그는 입이 크게 뚫린 가면을 썼다. 그의 뒤로 장총을 든 인물이 무릎을 높이 들고 함께 걷는다. 장총을 든 인물은 인중이 크고 깊게 강조된 가면에 버킷햇을 썼다. 그들의 뒤로 일반 시민 복장의 인물들이 각자 어찌할 줄 몰라한다. 모두 모양이 조금씩 다른 단색의 가면을 썼다.

연대의 대안으로서의 연극

1950년 6월부터 7월, 국군과 경찰은 수천의 사람들에게 좌익 혐의를 씌워 대전형무소로 이감한 후 골령골에서 세 차례에 걸친 학살을 자행했다.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총을 쐈고, 구덩이 아래로 묻어버렸다.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가 끝난 뒤 시작된 미군정으로 인해 친일청산에 실패하였고, 이에 분노한 사람들은 골령골에서 그렇게 처형당했다. <적벽대전>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무대구성과 영상, 나레이션 등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특히 무대 벽면에 영사되는 학살 당시의 사진들을 통해 오랫동안 감추어진 끔찍한 이야기를 실토했고, 공연의 말미에는 무대 바닥에 실제 발굴 현장 사진들을 비추면서 땅 아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밝힐 것이 있다. 나는 이날 오전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사건 제74주기 합동위령제에 참석하였고 수많은 유족을 마주쳤다. 슬픔과 분노, 원망은 유가족들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한 국가기관의 위원장은 한국전쟁기 피학살자를 모독4)하였고, 일찍이 약속된 기억공간 조성은 갖은 이유로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5) 그 자리에서 나는 ‘연극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고 생각했다. <적벽대전>은 잠시간의 좌절을 무너뜨렸다. (일으켜 세웠다고 해야 하나?) 공연장을 나서며 “이런 내용일 줄은 전혀 몰랐어”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어쩌면 무력함을 이겨내는 건 연대이며, 연대는 극장에서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에르츠가 말하듯 ‘오른손’이 힘을 증명할 때 ‘왼손’은 그에 예속된다. 그럼에도 왼손은 오른손이 있는 한 언제나 존재하고 만다. 언제나 질 운명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단 하나의 왼손만 있다면.

<적벽대전>의 공연 사진. 돌계단 위에 세로로 긴 흰색 깃발을 든 인물이 허리를 낮추고 서 있다. 그는 주립과 비슷한 형태의 작은 모자에 네 개의 깃을 달아 착용했다. 계단 아래 사람들은 모여 서서 상체를 조금 숙이고 무릎을 굽힌 채 두 팔을 좌우로 들어올려 춤을 춘다.


[사진 출처: 나래레더]

마당극패 우금치 <적벽대전>
  • 일자 2024.6.19 ~ 6.30
    장소 별별마당 우금치 관용극장
    작/연출 류기형 출연 이주행, 김황식, 성장순, 이신애, 임창숙, 이광백, 김시현, 김연표, 김미희, 이동혁, 임지석 마케팅 이동혁, 성장순, 김언표 홍보 박지헌, 유도현 주최/주관 마당극패 우금치 공동기획 우금치, 티나마리밴드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06908
  1. 로베르 에르츠, 박정호 옮김, 『죽음과 오른손』. 문학동네, 2021, 77쪽.
  2. 김태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의 진상규명 운동사 - 대전 산내 골령골의 사례를 중심으로」, 『골령골』, 문화의힘, 2022, 136-137쪽 참조.
  3. “골령골 유해의 배치는 ‘누적분포’의 대표적 사례로서(설은경 2013: 20-21), 수백 명분의 사지뼈가 여러 겹으로 뒤섞인 채 존재한다. 이는 학살 당시 피학살자의 시신이 도랑이나 구렁이에 던져져 층층이 쌓인 결과 나타난 모습이다.” 김태인, 「한국전쟁기 민간인피학살자 유해의 물질성과 기억정치: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사례를 중심으로」, 『2023년 추계 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 - 실행중인 인류학』, 2023, 84쪽.
  4.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5279.html
  5. https://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11468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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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김지수
전쟁 기억으로 가득한 박물관에서 일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연극학과 전통음악사학을 공부하였으며 국민국가와 국가폭력이 무속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는 데 관심이 있다.
rlawltn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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