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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비주얼에 속지 말 것: 맥베스 속 숨겨진 이야기

국립극장 <맥베스>

해랑

제257호

2024.07.11

지금까지 장르를 막론하고 작품에 농인 캐릭터가 나올 때면 대부분 사랑 이야기와 연결되어 내용이 전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도 청인과 농인의 사랑. 농인 캐릭터가 듣지 못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청인인 연인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준다든가, 농인을 만나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던 청인이 농인을 만나 호감을 가지고 사랑에 빠지면서 농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요즘에는 이러한 서사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그 수는 적다.

2023년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된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은 농인 배우 박지영과 청인 배우 이원준이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되는 극이다. 그렇지만 배우로서 이들이 특정 캐릭터로 등장한 것이 아니었기에 농인과 청인 사이의 차이를 메꾸려는 시도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는 느낌이었다. 이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우리읍내>가 올라갔는데, 주된 소재는 아니었지만 농인과 청인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여전히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작품 모두 극 자체만 봤을 때는 흥미로웠지만, 농인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 있어서 아쉬운 요소들이 있었다.
2021년 개봉한 영화 <이터널스>에는 농인 히어로 마카리가 나온다. 농인에게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히어로가 농인이라는 사실이 반가운 일이었다. 마카리는 음성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인 수어를 구사하며 등장한다. 심지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서 적을 공격한다. 일상생활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나는 것은 단순히 한 캐릭터를 보는 것을 넘어 긍정의 힘을 갖게 한다. 농인들은 마카리를 보면서 힘을 얻었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맥베스>는 그래서 더 통쾌하고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기존의 드라마, 영화, 연극 등에서 볼 수 없었던 캐릭터의 등장.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살인을 하고 파괴와 파멸을 향해 가는 극.

<맥베스>의 공연 사진. 긴 철제 의자 위에 선 한 배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손의 엄지를 들어올리고 있다. 검은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를 입었고, 주름이 가득 잡힌 하얀색 러플 칼라를 착용했다. 검은색 상의에는 푸른색으로 “FAIR IS FOUL”이라는 <맥베스>의 마녀들 대사가 적혀 있고, 검은색 바지 위에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진 치마를 둘렀다. 그의 뒤쪽으로는 머리끝부터 발목까지 비닐로 덮인 채 두 발만 밖으로 나온 사람 형체가 천정에서부터 거꾸로 매달려 있고, 강렬한 붉은 조명이 쏟아진다. 뒷벽에는 커다랗고 굵은 새빨간 글씨로 “죽었다 코오더”라고 쓰여 있다. 두 배우가 천정에 매달린 사람 형체와 철제 의자 위 배우를 바라본다.

수어는 오랜 세월 ‘아름다운 언어’라고 인식되어 왔다. 손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언어. 안타깝게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수어는 한국의 공용어로 인정되었다. 수어에는 한국어에서는 볼 수 없는 문법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문법을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 국립극장의 <맥베스>가 잔혹하고 비열하게 느껴지는 건 수어가 시각적인 언어라서다. 조명과 무대 위 영상이 더해져 배우들의 대사는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다. 분명히 수어를 모르는 청인들도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수어는 단순히 손짓과 마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뮤지컬 장르의 이전 공연들에서는 농인 배우를 위해 무대 밖에서 박자를 세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수어로 노래할 때 모두가 같은 속도로 수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대 밑에서 수어로 1, 2, 3, 4를 말해주면, 배우들은 그에 맞춰 박자를 인지하면서 연기했다.1) 그렇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해도 박자를 세주는 사람은 극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박자를 세야 했고, 배우들도 박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맥베스>에서는 박자를 인지할 수 있는 장치로 LED 바를 이용했다. 그것은 객석 1층과 2층 사이를 연결하는 벽에 설치되어 있었고, 배우들은 그 장치를 통해 박자를 확인하면서 연기했다. 관람하는 동안 뒤에서 빛이 번쩍거리는 것이 느껴져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극을 관람하는 데 있어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배우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해 있는 것조차 연극의 한 요소로 느껴졌다.
프로그램북에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연습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모든 페이지에는 한국어(묵자)뿐만 아니라, 점자와 함께 수어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가 삽입되어 있었다. 수어 영상은 농인 드라마투르기가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번역해 직접 구사했는데, 다른 통역사를 거치지 않아 극에 대한 정보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맥베스>의 공연 사진. 무대 가운데에서 일곱 명의 배우들이 춤을 추고 있다. 두 배우는 방수재질의 하얗고 긴 앞치마에 하얀 장화를 신고 하얀 머릿수건을 둘렀으며, 다른 배우들은 검은색 계열의 화려한 의상을 입었다. 무대는 삼면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벽의 하단은 하얀 타일로 되어 있고, 벽의 상단에는 붉은색과 푸른색 톤의 영상이 흘러간다. 영상 속에는 엄지를 치켜든 손 모양이 중앙에서부터 바깥쪽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점점 크게 드러난다. 천정에서는 다양한 색깔의 조명이 쏟아지고, 미러볼이 돌아가면서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서 원작의 성실한 구현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맥베스는 ‘막’으로 등장했고, 세 명의 마녀는 무당으로 등장했다. 소리꾼들의 노래는 원작에 없는 것들이었고, 한국의 노래를 가져와 더 흥겹고 즐거우면서도 한(恨)이 서려 있었다. 서양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극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느낄 수 없었을 것들이었다.
퍼펫티어2)의 등장도 놀라웠다. 인형극을 본 경험이 적었기에 연극에서 인형을 조작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람처럼 생명이 있고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형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졌다. 또한 인물들의 서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어 이런 방식으로도 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맥베스>의 공연 사진. 검은색 가죽 재질의 원피스에 커다란 검은색 러플 칼라를 한 배우가 철제 테이블에 앉아 있다. 한 손은 머리에, 다른 한손은 러플 칼라에 얹고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이다. 그 옆으로 배우와 같은 의상을 입은 인형이 앉아 있고, 하얀색 방수재질의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두른 두 퍼펫티어가 인형을 조종하는 중이다. 뒷벽의 선반 위에는 동물의 머리 모양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는데, 그중 하나에는 커다란 사각칼이 꽂혀 있다. 무대 전체에 푸른빛의 조명이 들어 온다.

농인 배우도 충분히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다. 연극 제작을 함께하는 구성원 중에 수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면. 혹은 수어를 몰라도 농인 배우와 대화하기 위해 수어 통역사를 부르는 등 적극적으로 관계맺기를 위한 노력을 한다면. 이제는 농인이라서 안된다는 말은 그만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연극 제작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충분한 제작비가 있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때로는 포기하고 제외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감정의 경험,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의 짜릿함과 기쁨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인’ 배우라는 호칭에 대해서 여전히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단일한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배우에게도 여러 정체성이 있겠지만 그중에 ‘농인’ 정체성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줬으면 좋겠다. 그들은 한국수어로 말하고 청각적인 정보보다 시각적인 정보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농인’이라는 이유로 더 특별하게 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양가적인 마음 같지만, 말하고 싶은 건 단순하다. 알아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신경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농인’ 배우임을 인지하되 그들에게 극복 서사를 씌우지 않았으면 한다.

비장애인 배우는 많다. 장애 정체성이 있는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농인 정체성을 지닌 배우는 더욱 드물다. 앞으로 더 많은 배우들을 볼 수 있길, 이들이 단순히 사랑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장르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3)

<맥베스>의 공연 사진. 농인배우들은 무대 중앙 철제 의자와 테이블에 앉거나 서서 연기하고 있고, 소리꾼들은 삼면의 무대 벽을 따라 놓인 철제 의자에 앉아 있다. 무대에는 노란색과 초록색의 조명이 쏟아지고 뒷벽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쓰여 있다. “보자보자보자보자보자 막이 코더고 코더가 막이다 막이 코더 것을 다 가지게 된다 그래 막은 마침내 왕이 되실지어다”.


[사진 제공: 국립극장]

국립극장 <맥베스>
  • 일자 2024.6.13 ~ 6.16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각색·연출 김미란 농인배우 금예지, 김우경, 박지영, 오서진, 우지양(Bitch-yang 비취양), 이혜진 소리꾼 김소진, 김율희, 이승희, 추다혜 음악 강상훈(베이스), 강태훈(거문고), 이향하(고수) 퍼펫티어 나경호, 박동조 음악감독 이향하 안무 최성대 드라마트루기 박아름 무대 송성원 조명 박유진 영상 고동욱 음향 이상현 의상 조은실 인형 문재희 소품 육다솔 분장 이지연 무대감독 오상영 조연출 박한서 음악 프로그래머 신예훈 조명 프로그래머 김성민 연습실 수어 통역 김보석, 남진영, 백수진, 조예림, 명혜진, 이화정
    관련정보 https://www.ntok.go.kr/kr/Ticket/Performance/Details?performanceId=266506
  1. 극단 난파의 <공범을 찾습니다>, 핸드스피크의 <미세먼지> 등의 공연이 이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2. 연극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 <맥베스>에서는 퍼펫티어들이 손을 사용해 인형을 움직였다.
  3. 이연주 작·연출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대사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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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

해랑
관심사가 많은 사람. 농인의 문화예술 향유권에 관심이 있다. 아티스트, 공연 관계자, 관람객을 위해 <문자통역신청매뉴얼>을 제작·배포했다. <2023 SPAF>, <모두예술주간 2023>, <이런 밤, 들 가운데서> 등에서 접근성 자문을 하고, 2024년 재공연한 <인정투쟁; 예술가 편>에서는 접근성 창작진으로 함께했다.
deafjam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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