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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과 몸

쓰고 보니

윤소희

제254호

2024.05.30

[쓰고 보니]는 쓰는 동안 극작가의 몸을 통과해 간 것들을 기록합니다. 극을 쓴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실천을 동반하는지 그 흔적을 스스로 기록하고 지금의 극쓰기를 반추해보고자 합니다.

지난달엔 연극in에서 희곡 공개 모집이 진행되었지요. ‘희곡 쓰기를 구성하는 몸짓들 중 하나를 소거하여 요청’하는, 즉 무언가 ‘없이’ 써보라는 제안이더군요. 호호 뭔가 울리포 같기도 하고 재미있군, 생각했답니다.

걷는 도중 나는 나에게 카톡을 보내곤 합니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요. 4월 1일 공모의 글을 보고 역시나 카톡을 열었는데요. 곧바로 저는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월 29일에서 날아온 카톡.1) 결국 조만간 뭐든 없앨 운명이었던 것일까! 그래서 한 번 없애보기로 했습니다.

필자가 자신에게 보낸 카톡 화면 캡쳐. 윤소희라는 이름, 그 아래 메시지를 보낸 날짜인 2024년 3월 29일 금요일이 떠 있다. 날짜 아래로 오후 5:55, 노란색 말풍선 속에 “메마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메시지, 그리고 그 아래 오후 7:06, 또 다른 말풍선이 있다. 다만 이 말풍선 속의 메시지 위에는 회색 선을 여러 번 동그랗게 겹쳐 그려 그 내용을 알 수 없게 되어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1번 주석 참고.

한편 요즈음 저는 한 척척박사의 추천으로 로절린드 크라우스의 책을 읽고 있는데요. 사실 회화나 사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읽고 있다고 말을 해도 될지 망설여지는군요. 그러다 한 문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쇠퇴는 유행이 지난 대상을 유용성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그 법칙의 공허한 약속을 드러”2)낸다고. 음, 좀 더 쉬운 문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매체가 그것이 쇠퇴(obsolescence3))할 때 재창안의 가능성을 향해 열린다”4)고. 그러니까… 망할 때 오히려 무언가 생성된다?

마치 모든 e를 없애듯, 제약 놀이처럼 생각하고 무언가를 없애보는 것으로 시작했는데요. 동시에 크라우스의 책을 오독하며, 저는 아무렇게나 제 마음대로 “망할”의 자리에 “없앨”을 놓아 봅니다. 그렇게 되면… 없앨 때 무언가 생성될 수도?

여기에 제가 무엇을 없애보았는지 쓸 수 없어 아쉽습니다. (한 달만 뒤에 이 글을 쓸 수 있었더라면…) 어쨌든 저는 제안 받은 항목들 중 하나를 골라 무언가를 없앴고요. 그것을 고르게 된 까닭은 제 몸을 통과한 경험에서 기인합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제 몸의 기관 일부를 “잃었고” 무언가 깨닫게 되었거든요. 그것은 만물 코어설입니다. 코어가 없으면 똑바로 앉을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더라고요. 재채기나 기침을 할 수도 없고 큰소리로 외칠 수도 없답니다. 아셨나요?

잠시 고리타분한 이야기. 연극의 3요소를 희곡, 배우, 관객이라고 하고 희곡의 3요소를 해설, 대사, 지문이라고 하지 말입니다. 옛날 옛적 아 선생께서는 비극의 6요소로 플롯, 성격, 언어, 표현, 사고력, 시각적 장치, 노래5)라고 하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 희곡은, 연극은, 비극은 이미 망했으니, 다시 “망할”의 자리에 “없앨”을 놓아보면, 그런 것 없이도 희곡이 될 수 있고 연극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몸이 등장하고 움직이며 소리를 내어 말하는’ 글이 바로 희곡의 요소가 아닐지, 그것이 이 매체의 토대는 아닐지? 희곡의 무언가를 없애보면서, 무언가 없이 글을 쓰면서, 생각했습니다.

쓰고 보니, 그렇다고요.

[사진: 필자 제공]

  1.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연극in 희곡 공개모집의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이 과정은 블라인드로 진행되지요. 제가 어떤 글을 썼는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의 카톡이라 부득이하게 가렸습니다. [쓰고 보니]에서는 제가 글쓰기에서 몰두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 쓸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구구절절 각주를 남깁니다. 글의 진행을 위해 부연하자면, ‘-없음’과 관련된 카톡을 남겼습니다.
  2. 로절린드 크라우스, 『북해에서의 항해』, 김지훈 옮김, 현실문화연구, 2018, 54쪽.
  3. obsolescence를 검색하면 주로 노후화, 진부화, 스러져 감, 없어져 가고 있음, 기관(器官) 따위의 폐퇴나 위축 등의 사전적 정의가 나옵니다.
  4. 위의 책, 114쪽.
  5. 아리토텔레스, 『시학』, 이상섭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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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윤소희
글을 쓰고 공부하고 연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희곡의 작동 원리를 즐겁게 탐구하고 있기도, 가까운 미래의 시간에 대해 쓰고 있기도 합니다.
ysohee0621@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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