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
신지원
56호
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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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여자
경비
남편
남자
무대
어느 아파트 복도와 집 안
여자 장바구니 들고 등장. 현관 번호 키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번호가 잘못됐는지
문은 열리지 않는다.
- 여자
- 내 정신 좀 봐.
여자 몇 번을 더 시도한 끝에 집안으로 들어간다. 이리저리 집을 뒤지던 여자가
서랍에서 양말을 꺼내 신는다.
- 여자
- (왠지 신이 났다) 그럼 시작해 볼까.
무대 한쪽에서 경비 등장. 여자의 집 문을 두드린다.
- 여자
- 아 씨, 귀찮게 뭐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참인데. (밖으로) 누구세요?
- 경비
- 아, 집에 계셨네요? 경비실입니다. 싸인 좀 받아야할게 있어서요.
- 여자
- 제가 지금 샤워중이거든요. 좀 있다 오시겠어요?
- 경비
- 뭐 급한 건 아니니 알겠습니다. (사이) 샤워중이면… 어디 나가시나 봐요?
- 여자
- 네? 그건 왜 물으세요?
- 경비
- 아니 있다 몇 시 쯤 다시 와야 하나 해서요. 저도 헛걸음하기는 싫으니까요.
- 여자
- 오늘 안에 꼭 해야 해요? 아깐 급한 건 아니라더니.
- 경비
- 급한 건 아니고 그래도 이왕 온 김에 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중얼거리며) 마침
샤워중이기도 하고… - 여자
- 아무튼 지금은 못 나가니까 내일 오시던지 문 앞에 두고 가시던지 하세요.
- 경비
- 알겠습니다. 그럼 밤에 다시 오죠.
경비 가려는데 남편 등장한다. 경비와 남편 서로를 보며 흠칫 놀란다.
- 경비
- 안녕하세요. 저 경비실에서 왔는데…
- 남편
- 아, 경비 아저씨 알죠. 알죠.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 꼭대기 층까지 오시고.
- 경비
- (놀라며) 네? 저를 아신다고요?
- 남편
- (자신감 없게) 왜 알면 안 되나요?
- 경비
- 아뇨. 요즘 사람들이 어디 경비나부랭이한테 관심이나 있습니까. 놀이터 그네보다
못하죠. 알아봐주신다니 고맙네요.
밖이 소란스럽자 여자 문에 바싹 붙는다.
- 여자
- 아직 안가셨나요?
- 경비
- 이제 막 가려던 참입니다. 사장님이 퇴근하셨네요. (남편에게) 들어가시죠.
- 남편
- …여보 나왔어. 문 열어줘.
- 경비
- 그럼 있다 오겠습니다. 사모님.
- 여자
- (사이) 뭐 하러 또 오시려고요 아저씨. 남편에게 싸인 받으세요.
여보, 싸인 좀 해드려.
여자 말하며 창문을 연다. 그리곤 아래를 내다본다.
- 경비
- 아차차. 그럼 되지. (어색하게 크게 웃는다) 저 이번에…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는데
동의 싸인 좀… - 남편
- 아내에게 받으시죠. 이 집 주인은 아내거든요.
- 경비
- 저런! 어쩌다가. 하긴 요즘엔 여자들 파워가 더 쎄죠. 남편들이야 찍소리야 합니까 어디.
- 여자
- 여보, 뭐해요. 싸인 해드리고 보내드려요. 바쁘실텐데. (계속 창밖을 살핀다)
- 남편
- 아, 알겠어. 펜… 있으신가요?
- 경비
- 펜이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아이쿠! 깜박 놓고 왔네. 내 정신이 이래요. 하하
- 남편
- 싸인 받으러 다니신다더니 펜도 안가지고 오셨어요?
- 경비
- 어디 오다가 떨어트린 모양입니다. 아님 사모님께 펜 하나만 달라고 하죠 뭐.
- 남편
- 아, 예.
잠시 정적.
- 경비
- 안 들어가세요?
- 남편
- 들어가야죠. 여보. 문 좀 열어줘.
- 여자
- 나 샤워 중이라니까. 조금만 기다려.
- 경비
- 허허. 아니 무슨 부부사이가 샤워한다고 문도 안 열어줍니까? 그리고 번호키인데
누르고 들어가시면 되지. - 남편
- 그게 저…
- 경비
- 그러고 보니 이거 참 이상하구만. 사장님은 밖에서 문 열어 달라 난리고
사모님은 샤워중이라면서 할 말은 다하고 말이야. - 남편
-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거야 아내가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고 심심하면
비밀번호를 바꿔대는 통에 잠시 까먹은 것뿐인데. 이제 막 기억나 들어가려는 참이요!
남편 비밀번호를 누른다. 맞지 않다.
- 남편
- 이거 봐. 또 바꿨구만! (문 두드리며) 거, 문 좀 열어봐!
- 여자
- (신경질적으로) 샤워중이라니까!
- 경비
- 이거, 당신들 아주 수상해. (문 두드리며) 사모님 일단 좀 나와서 얘기 해보시죠.
- 남편
- 뭐, 당신들? 수상한건 당신이지. 무슨 펜도 안가지고 다니면서 싸인 받나?
그리고 여기가 꼭대기 층인데 왜 다른 층에서 받은 싸인은 두 개 뿐이고? - 경비
- 이 양반 웃긴 양반이네. 누가 이 시간에 집에 있나! 다들 외출중이니까 그렇지.
- 남편
- 그걸 아는 사람이, 사람 없는 시간에 왜 돌아다니는데?
- 경비
- (왠지 할 말이 없어서) 일단 사모님 좀 나와 보시죠! 이 분이 정말 남편 맞습니까?
- 남편
- 당신 지금 누굴 의심하는거야! 그럼 당신이야 말로 진짜 경비 맞아?
- 경비
- 참나. 아까는 나 알겠다 하지 않았나? 사모님 좀 나와 보세요.
- 여자
- (혼잣말로) 왜 안 가고 지랄들이야. (밖으로) 제가 사실 중요한 일 중이라서요.
- 남편
- (경비에게) 바쁘다잖아! 왜 자꾸 나오라 그래!
- 경비
- 아직도 샤워중이신가요?
- 여자
- 아니요 그게…… 제모 중이에요!
- 경비
- 제모요?
- 여자
- 족집게로 하도 뽑았더니 쥐가 나서 다리가 움직이질 않네요. 남편에게 이런 모습
부끄럽기도 하구요. 우린 아직 신혼이라서…… 119 좀 불러주시겠어요? - 경비
- 무슨 다리에 쥐 낫다고 119까지…
- 남편
- (냉큼) 내가 내려가서 사람을 좀 불러 오겠어요!
- 여자
- 그래요! 여보 당신이 좀… 갔다 와요. 얼른! 냉큼! 빨리! 경비 아저씨도 남편을 좀
도와주시겠어요? 사람을 많이 불러와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좀 뚱뚱해서… - 경비
- 이대로 가긴 아쉬운데… 일단 알겠습니다.
남편과 경비 떠나려는데 남자 등장.
- 남자
- 누구세요?
- 경비
- 난 경비고
- 남편
- 전 이집 주인 남편인데요?
- 여자
- 어머, 벌써 누가 왔나요?
- 남자
- 경비? (놀라며) 남편? 내가 이 집 주인인데?
남편과 경비 한 순간 얼음. 안에서 듣고 있는 아내. 창문으로 뛰어내리려 준비한다.
- 남자
- 당신들 뭐야!
- 남편
- 아, 그게… 제가 집을 착각했나보네요. 전 1102호를 찾아가야하는데 그게…
여긴 1101호네요. 사실 제 집이 아니고 친구 집을 찾아가던 참이거든요! - 경비
- 친구 집? 아깐 당신 집이라며!
- 남편
- 친구랑 전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거든요. 그리고 언제 내 집이라 했습니까.
아내 집이라 했지. - 경비
- 당신 아내가 왜 친구 집에 있는데?
- 남편
- 정확히 말하면 친구 아내죠. 말했잖아요. 저흰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라서.
근데 안에 계신 분은 제가 공유하는 아내분이 아닌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실례.
남자 도망가려는 남편을 잡는다.
- 남자
- 잠깐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난 이혼한지 삼년이 넘었는데 아내가 어딨으며
당신은 경비라면서 그 옷 여기 경비 복이 아니잖아? - 남편
- 말했잖아요. 집을 착각했다고 하하.
- 남자
- 잠깐 잠깐 이거 뭐하는 놈들이야? 경찰 부를테니까 딱 기다려.
- 경비
- 겨…경비인 제가 있는데 경찰은 뭐한다고 부릅니까? 제가 내려가서 세콤을…
- 남자
- 세콤 좋아하네. 당신도 이상해. 이거 도둑놈들 아냐?
- 남편
- (고민하다가) 전 사실…… 벨튀예요!
- 남자
- 벨튀?
- 남편
- 네! 벨 누르고 튀려고 왔는데 이 집에 벨이 없고, 경비아저씨가 앞에 계셔서
실패 했네요… (고개 숙이며)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경비아저씨 저 잡아가세요. 내려가서 반성문이라도 쓰죠! 그쵸? 아저씨… - 경비
- 아… 벨튀! 그래 요 녀석! 누가 그렇게 벨을 누르나 했더니.
(남편 귀 잡고) 내가 이 놈 데려가서 혼꾸녕이라도 내겠습니다. 걱정마세요! - 남편
- 아이고 그래요! 전 혼나야해요. 혼나야 마땅하죠.
경비와 남편 서로 주거니 받거니 혼내고 혼나며 빠르게 도망.
- 남자
- 저, 저 이사를 가던지 해야지. 별 미친놈들이 다 있네.
남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다. 한 번에 열린다. 수건만 두른 아내가 나온다.
- 남자
- (깜짝 놀라며) 뭐야!
- 여자
- (아주 신경질적으로) 내가 샤워중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 진짜!
남자 밀치고 잰 걸음으로 도망친다. 남자 황당해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한다.
끝.
- 호들갑 작가소개
-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을 쓴 신지원은 명량해전이 일어나고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와 조선의 가톨릭 신부 김대건이 사망한 9월 16일에 태어났다. 작가는 본인이 태어난 생일을 아주 좋아해서 핸드폰 번호 마저 생일로 하고 십년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작가는 소설이 쓰고 싶어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한 이후 각종 시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현재 극작가를 꿈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쓰기를 꿈꾸는 중이다. 20살 때 시골에 내려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고 하자 큰아버지께서 “드디어 신씨 집안에도 문인이 나오는 구나!” 하시고 크게 기뻐하시며 손수 광주에서 서울까지 천자문 책 두 권을 사서 보내주셨다고 한다. 책은 대학 졸업을 앞 둔 지금까지 한 번도 펴 보지 않았다. 어쨌건 지금은 ‘시사낭만청춘 극단 끼’라는 대학생 극단에서 작가팀장으로 활동 중이다. 공모전은 떨어질까 무서워 아직 참여해 본 적 없다. 작가는 아직도 생애 첫 공연을 했을 때 받았던 두근거림 때문에 종종 잠을 설친다. 연애 하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연극을 만드는 중이다. (편집위원 오세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