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
강소진
52호
201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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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알리는 암탉의 우렁찬 울음소리 들린다.
외박한 채빈이 현관문 앞에 선다.
- 채빈
- 네, 이제 집 앞이에요. 선배님도 피곤하시죠?
아 - 벌써부터 어떻게 오빠라고 해요. (사이) 삐진 거예요?
알겠어요! 그럼… 오-빠. 아, 몰라. (수줍) 굿나잇-!
전화를 끊고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현관문 문고리를 잡는다. 멈칫한다.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 채빈
- 잤어? 미안. 야. 나 어젯밤에 너네 집에서 잔거다.
(사이) 우리 엄마가 혹시 전화하면 너랑 있었다고 해.
전화를 끊는 채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문고리를 잡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 들린다.
- 승구
- 학교 가니?
술이 좀 된 승구 등장
- 채빈
- (당황)아빠!
- 채빈
- 일찍 가네.
- 채빈
- 응.
채빈, 다시 현관문 등지는데.
- 승구
- 잠깐!
- 채빈
- (돌아본다)
- 승구
- 학교를 가는 거냐?
- 채빈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승구
- 화장이 다 번졌어
- 채빈
- 아직 서툴러서.
- 승구
- 아.
- 채빈
- 다녀오겠습니다.
- 승구
- 잠깐!
- 채빈
- 또 왜?
- 승구
- 오늘 토요일인데?
- 채빈
- 아, 진짜?
승구,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 채빈
- 내 정신 좀 봐. 착각했나봐.
- 승구
- (빤히 본다)
- 채빈
- 아, 이 바보.
- 승구
- 외박했니?
- 채빈
- 또 왜?
- 승구
- 응…?
승구, 채빈에게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는다.
- 승구
- 술 냄새도 안나. 담배 냄새도 안나.
- 채빈
-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웠으니까
- 승구
-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밤새도록 뭐했니?
사이
- 채빈
- 과제…?
- 승구
- 과제! 그렇지. 입학식 날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주셨다는 거지?
수업도 안하고 과제부터. 심지어 밤을 세야 할 정도로 빡센 과제를!
그렇다면, 밤새도록 우리 따님이 하신 과제는 무엇일까?
레포트 몇 장으로 작성해 오라시디? - 채빈
- 그게 그러니까.
- 승구
- 왜, 아직 마땅한 구라가 안 떠올라?
- 채빈
- 사실은 유정이네서 놀다가 잠들었어.
- 승구
- (본다)
- 채빈
- 진짜야!
- 승구
- (의심)
- 채빈
- 전화해볼까?
- 승구
- (자신의 휴대폰 주며) 응. 해봐.
- 채빈
- 아빠 진짜면 어쩌려고 그래?
채빈, 억울하다는 듯 열연하며 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가는 동시에 휴대폰 빼앗는 승구.
- 승구
- 유정이냐? 자는데 깨워서 미안하다. 채빈이가 아직 안 들어와서…
아아. 옆에서 자고 있어? 응. 그래. 그냥 영원히 쭈욱 재워라.
한참동안 서로를 쳐다보는 부녀.
- 승구
- 그러니까 우리 따님께서 외박을 하신 후,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
말을 맞추고 태연히 들어가서 마치 인간인지라 실수로 외박한 것처럼
엄마님께 말씀을 드리겠다?
채빈, 애교 있게 웃어본다.
- 승구
- 너 이 녀석 이 시간까지 뭐했는지 솔직하게 얘기해.
- 채빈
- 말해봤자 이해 못하잖아.
- 승구
- 들어보고 판단할게
- 채빈
- 솔직하게?.
- 승구
- 솔직하게
- 채빈
- 정말 솔직하게?
- 승구
- (버럭) 얼른 말 안 해?
- 채빈
- ...
- 승구
- 육하원칙으로다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 채빈
- 에라, 모르겠다…
사이, 둘 사이의 묘한 긴장감.
- 승구
- 언제
- 채빈
- 어젯밤
- 승구
- 어디서
- 채빈
- 자취방에서
- 승구
- 맙소사 (심호흡) 무엇을
한참 고민하는 채빈.
- 채빈
- 솔직하게?
- 승구
- 솔직하게!
- 채빈
- 첫 경험을…
뒷목 잡는 승구.
- 승구
- 어떻게
- 채빈
- 차근차근… 배워가며?
승구, 주저앉는다.
- 승구
- 누구랑?!
- 채빈
- 선배님… 아니, 이제는 오빠…!
- 승구
- 왜…?!
- 채빈
- 왜?
고민하는 채빈.
- 채빈
- 그것은 마법 같은 거야.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이 내 몸이 그렇게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자석처럼 이끌려갔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리수리 마하수리 아브라카타브라 뿅!
"뿅" 하는 순간 옆에 사정없이 채빈을 쥐어박는 승구.
- 승구
- 마법 같은 거?! 그래 이것아 - 요술 봉으로 실컷 맞고 어디 마법사 세계로 떠나봐라.
- 채빈
- 왜 때리는데! 솔직히 말하라며!
승구를 막는 채빈.
- 채빈
- 아빤 뭐야?
- 승구
- 아빤 뭐냐니? 이 녀석이 외박하고 들어오더니 정신 줄을 딴 데 묶어두고 왔나
- 채빈
- 아니, 아빤 왜 이제 들어오시냐고요.
채빈, 승구에게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 채빈
- 술 냄새도 나고, 담배 냄새도 나고, 여자 냄새도 나는 거 같은데?
- 승구
- 너랑 아빠랑 같냐?! 아빤, 사회생활 하잖아.
- 채빈
- 고등학교 때, 학교는 제2의 사회라고 배웠어. 사회생활 잘하려면 학교생활을 잘해야 한다 했다고.
나도 아빠처럼 사회생활 잘하려고- - 승구
- 남자랑 외박을 했다?
- 채빈
- 그렇지, 가 아니라! 아! 아빠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 승구
- 어찌됐건, 너의 첫 외박을 옳다구나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일단 들어가서 보자.
문고리를 잡는 승구. 멈칫한다.
- 승구
- 둘이 여행 갔다 왔다고 할까?
- 채빈
- 에?
- 승구
- 우리 딸, 수능 끝나서 대학 갔는데 기특해서 바람도 쐴 겸 아빠랑 둘이 여행 갔다 왔다고 할까?
- 채빈
- 참나, 사회생활 좀 한 게 집 앞에선 두려워?
- 승구
- 둘이 그냥 동네에서 밤새 술 먹었다고 할까? 너 요새 무슨 고민 같은 거 없냐?
- 채빈
- 없어.
- 승구
- 진짜 없어?
- 채빈
- 없어.
- 승구
- 그럼 뭐라고 하지?
깊은 한숨을 내쉬는 두 사람. 사이,
- 채빈
- 난 유정이네서 놀다가 잠든 걸로 할 거야
- 승구
- 그럼 나는?
- 채빈
- 아빤 아빠 나름대로의 이유를 만들어
- 승구
- 상가 집 갔다 왔다고 할까?
- 채빈
- 진부해
- 승구
- 진부해?
- 채빈
- 아, 몰라. 나는 대충 넘어갈 생각이니까 아빤 알아서해.
한참 고민 중인 두 사람 사이로 동환이 태연하게 지나간다.
- 동환
- (승구에게) 아빠 지금 출근해? (채빈에게) 학교 가냐?
아무렇지 않게 문고리를 잡고 열려는 동환.
- 승구, 채빈
- 안 돼!
- 동환
- 왜?
- 채빈
- 어디 갔다 오는데?
동환에게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는 승구와 채빈.
- 승구
- 담배 냄새
- 채빈
- 술 냄새
- 승구
- 여자 냄새
- 채빈
- 싸구려 바디클렌저 냄새까지
- 승구
- 완벽해
- 채빈
- 완벽한
- 동환
- 완벽한?
- 채빈
- 범죄야
채빈의 머리통을 쥐어박는 동환.
- 동환
- 뭐야, 새삼스럽게. 여자 친구랑 여행 갔다 온다 했잖아.
- 승구
- 여자 친구랑
- 채빈
- 여행?
- 동환
- 응.
다시 문고리를 잡는 동환. 다시 동환을 막는 두 사람.
- 동환
- 왜 그러는데. 나 피곤해.
- 채빈
- 우린 더 피곤해
- 동환
- 뭐야. 두 사람
- 채빈
- 여자 친구랑 외박하고 아침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냐고.
- 동환
- 엄마한테 며칠 전부터 말했잖아. 여자 친구랑 2박 3일로 여행 다녀온다고.
- 채빈
- 그랬더니 엄마가 "다녀오세요, 아드님." 했어?
- 동환
- 어! 아빠도 다녀오라고 십 만원 줬잖아
- 채빈
- 돈까지 줬어? 외박을 하는데 돈까지? “아이고. 우리 아드님 외박 파이팅 하십쇼.” 하면서?
- 승구
- 그야, 우리 장남 기죽을까봐 그러긴 했지
- 채빈
- 뭐야, 완전 불공평하잖아.
- 동환
- 야, 넌 여자잖아.
- 채빈
- 왜 오빠는 돈까지 줘가면서 외박 시켜주고 난 이렇게 절절매야 돼?
- 동환
- 너 외박했냐?
- 채빈
- 그래! 했다!
- 동환
-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 채빈
- 아빠도 했는데?
- 동환
- 아빠는 사회생활 하잖아 인마. 너랑 아빠랑 같냐?
- 승구
- 아빠랑 너랑 비교하면 안 된다.
- 동환
- 추워. 둘이 알아서 해. 나 먼저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환.
- 채빈
- 몰라. 나도 들어가서 따질 거야! 불공평하다고.
채빈, 따라 들어가려는데. 승구가 막는다.
- 승구
- 너 지금 아주 잘 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야 가끔 있는 일이니까.
원래 저런 사람이지 하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첫 외박이 더 무서운 거다.
너. 나 엄마랑 결혼하고 첫 외박 했을 때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
무덤까지 따라가는 게 첫 외박이야. 이 사회초년생아.
잠시 후, 비장한 태도의 채빈.
- 채빈
- 더 이상 피할 생각만 할 수는 없어! 아빠. 우린 한 배를 탄 거지?
- 승구
- 우리가 한 마음이 되면!
- 채빈
- 엄마 한명쯤은 이길 수 있을 거야.
- 승구
- 너 잘해야 된다! 아빤 죽어도 우리 딸 편 할 거야!
채빈아빠, 아빤 우리 집안의 가장이며 자랑스러운 나의 기둥이야! 알지?! 기죽지마 절대! - 승구
- 우리 딸, 아빠가 정말 사랑한다!
문고리를 힘차게 잡고 여는 부녀. 대충 씻고 나온 동환이 두 사람을 본다.
- 동환
- 엄마 없는데?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강소진은 1988년 3월 14일 4kg이라는 엄청난 무게로 태어났다. 무게만큼이나 풍부한 감수성으로 유아기를 보내고, 청소년기에 쓴 기승전결 뚜렷한 반성문을 계기로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고전문학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예술대학 극작과에 지원. 2007년 현역으로 입학. 여전히 작가를 꿈꾸고 있다. (편집위원_ 오세혁)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