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와 궤변, 그 현실에 대한 통렬한 은유
[최윤우의 연극 미리보기] 국립극단 <구름>
최윤우_연극평론가
웹진 32호
2013.09.26
무대에서 만나는 그리스 비극의 재미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인간의 생에 대한 연민과 아픔이다. 그렇다고 정해진 방향대로 체념하며 살아가는 삶을 조명하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저항하며 반복적으로 투쟁한다. 끝내 그것이 이뤄지지 못한 채 예정된 신탁에 의한 결말로 치닫게 되지만, 악전고투하며 운명을 뒤틀고자 하는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을 만나게 되는 깊이...
무대에서 만나는 그리스 비극의 재미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인간의 생에 대한 연민과 아픔이다. 그렇다고 정해진 방향대로 체념하며 살아가는 삶을 조명하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저항하며 반복적으로 투쟁한다. 끝내 그것이 이뤄지지 못한 채 예정된 신탁에 의한 결말로 치닫게 되지만, 악전고투하며 운명을 뒤틀고자 하는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을 만나게 되는 깊이가 있다. 반대로 그리스 희극은 이러한 운명과는 상반되는 직접적인 현실의 문제를 풀어낸다.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을 뒤틀기도 하고, 사회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들 역시 가볍게 희화화시킴으로써 그 속에 내재돼 있는 사회구조의 부조리한 면면들을 바라보게 한다. 때로 그것은 아주 과장된 화법과 표현으로 전개되기도 하고, 직설적이고 가감 없는 촌철살인의 현장을 펼치면서 비극보다 더한 핏빛 논쟁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러한 그리스 희비극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다. 더욱이 비극보다 기회가 적었던 그리스 희극을 관극할 수 있는 경험은 쉬이 오지 않는다. 지금 국립극단에서 이어지고 있는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3부작 시리즈’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국립극단은 한국연극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그리스의 대표적인 희극 3편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은 그리스 희극의 대표적인 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고대 그리스 최대의 희극 시인의 <개구리> <구름> <새>다. 이미 지난 9월 3일부터 15일까지 첫 작품으로 <개구리>(각색/연출 박근형)가 공연됐고, 이어지는 두 번째 무대가 <구름>, 그리고 마지막 작품 <새>가 연이어 공연된다. 재밌는 지점은 2500년 전에 썼던 이 작품들이 갖는 시의성이다. 당시의 사회적 모순들이 지금 우리 현실의 모습과 닮아있으며, 그러한 모순을 야기하고 있는 불온한 행위와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들 역시 전혀 다르지 않은 속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는 통찰과 풍자로 조망하고 있는 그리스 희극의 강점은 <구름>도 마찬가지다. 전작 <개구리>가 조금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을 해결할 수 없는 치열한 논쟁 속에 묶어내며 지금 우리의 현실을 더 숙연하게 들여다보게 했다면 <구름>은 ‘가치’를 잃어버린 개인의 욕망과 사회제도의 모순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다.
이기적인 욕망의 말로(末路)
아들의 낭비벽으로 빚에 쪼들리던 아버지가 있었다. 말을 듣지 않는 아들 때문에 학교에 간 아버지는 소크라테스의 현란한 궤변에 감동받고, 정론正論과 사론邪論 중 사론이 이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아들을 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보내 궤변술을 배우게 한 뒤 그를 이용해 빚을 탕감할 꾀를 낸다.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아들은 궤변을 구사하여 채권자들을 쫓아 버린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고 제우스신을 부정하는 패륜적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궤변술로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하자, 화가 난 아버지는 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불을 지른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회제도(교육)를 악용하고자 했던 한 아버지가 맞이하게 되는 비극적인 말로는 일면 통쾌하다. 패륜에 대한 연민이 아닌 자업자득이라고 손가락질하며 한바탕 웃어넘기게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즉, 사건에 대한 상황희극이 아닌, 개개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모순 속에 갇혀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 대한 날선 풍자와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연극 <구름>은 경제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 상식보다는 억지와 허세가 우선시 되는 사회풍토를 직시하게 한다. 바로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 그대로다. 삶의 가치를 상실한 채 질주하고 있는, 어떤 결말로 돌아올지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개인의 욕망이 교육, 또는 사회제도를 통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
연출가 남인우가 바라보고 있는 연극 <구름>의 질문이다. BC 423년 소피스트의 신교육을 공격한 사회풍자희극이었던 원작을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는 현대 교육을 매개삼아 시대에 만연한 허위와 거짓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내면의 욕망을 풀어내는 방식을 ‘음악’을 매개로 한다. 록, 트로트, 국악이 한데 섞여 내는 기묘한 분위기가 아이러니로 가득한 세상을 반증하는 하나의 장치가 되고,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가야금 등 다양한 악기들을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며 극적 효과를 배가시켰다. 작품 곳곳에 흐르는 라이브 연주와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대사는 이 작품의 백미. 2500년 전 문학, 예술,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당대를 신랄하게 뒤흔들었던 아리스토파네스의 독특한 작품 연극 <구름>을 기대해볼만한 이유다.
[사진제공 : 국립극단]
- 일시 : 9월 24일~10월 5일
평일 8시/토,일,공휴일 3시/월 쉼
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원작 : 아리스토파네스 『구름』
공동각색 : 남인우, 김민승
연출 : 남인우
출연 : 장성익, 박성준, 전영, 김승환, 이상홍, 김문영, 이철희,
김소리, 박수진, 이슬비, 고영민, 이승헌, 박인지, 김한나
문의 : 1688-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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