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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닐고, 먹고, 사랑하게 해준

2024 서울변방연극제 <[변방농장] 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

김지수

제262호

2024.09.26

‘축제’는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지, 낯선 장소에서 세계와 나를 바라보면서 기꺼이 어떤 세계와 접촉하거나, 연루되거나, 전이되고 싶고, 될 수 있는 태도를 제안하는 2024 서울변방연극제가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서울, 대전, 목포에서 진행되었다. 목포에서는 <윈~윈아일랜드>, <[변방농장] 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이하 <공중제B>), <[변방스포] 삶의 꼴> 세 편의 공연이 관객을 만났는데, 필자는 그중 <공중제B>를 관람했다.

<공중제B>는 목포 만호동 일대를 거닐며 진행되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공연은 9월 7일과 8일 이틀 동안 오후 13시 반과 17시에 하루 2회씩 잡혀 있었지만, 주최 측에서 필자를 포함한 극단 애인 단원들의 단체관람을 위해 7일 저녁 8시에 ‘심야식당’ 콘셉트로 추가 공연을 마련해주었다. 때문에 우리 일행의 경험은 낮 시간에 만호동 일대를 거닐었던 관객들이 마주했던 분위기와는 다를 수 있다.

목포진을 방문하고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가는 일행의 뒷모습을 촬영한 사진. 전동휠체어를 탄 이, 어깨에 안내 깃발을 걸쳐 멘 이, 한 손에 작은 아이스박스를 든 이 등 관객과 창작진이 함께 이동하고 있다. 길의 양옆 난간에는 그곳이 군사 진지임을 확인할 수 있는 커다란 깃발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있고, 멀리 커다란 교회 건물과 어둠에 잠긴 도시가 드러난다.
사진: 극단 애인 제공

저녁 8시 공연을 보기 위해 빵집 ‘오붓한 생’ 앞에 모인 우리 일행은 모두 7명.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정원은 최대 5명이었다. 우리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 가위바위보를 해서 공연에 참여할 사람 5명을 정했다. 하지만 주최 측에서 정말 감사하게도 가위바위보에서 진 두 사람도 함께 이동하며 공연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오붓한 생’은 설탕과 우유를 넣지 않고 천연 발효한 통밀로 만든 빵만을 판매하는 ‘건강한 빵집’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공중제B> ‘조류편’에 걸맞게 녹조류, 갈조류로 자신을 소개하는 창작진, 그리고 자동차 등 거리에서 마주칠 만일의 사고를 대비하여 함께 거닐며 안내를 하는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티켓을 대신하는 서울변방연극제 전체 공연 안내서와 “요즘 가장 ‘힙’한 사람들이 걸고 다닌다는” <공중제B> 목걸이 줄을 먼저 받았는데, 목걸이의 메인 장식은 창작진들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관객이 머물 곳에서 쓰거나 떠올렸던 문구들이 적힌 메모 쪽지였다.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라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지만, 운치 있는 가로등이 켜진 어둑하고 조용한 거리를 거닐며 공연은 시작되었다.

목포는 무안, 신안, 영암이나 인근 섬에서 수확하는 모든 농수산물이 모였다가 전국 각지로 유통되는 도시인 만큼 가장 다양한 건어물 상점들이 있다고 소개된다. 우리가 첫 번째 머문 곳 ‘대진상회’도 영업이 끝나서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곰국처럼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는 진도 미역을 선물 받았다. 두 번째로 머문 곳은 건어물 상가 거리 중간에 위치한 ‘고양이 골목인 고양?’이다. 그리고 이내 사랑스러운 고양이 그림과 모형들이 아기자기한 골목에서, 알 수 없는 숫자가 적혀 있는 종이를 찾는 보물찾기가 진행된다.

어둑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건해산물 상가거리 입구의 아치형 간판을 촬영한 사진. 간판 위쪽에 고양이 모양의 조형물과 “목포랑 놀고양”이라고 적힌 글씨에 주황색과 푸른색의 불이 들어와 있다.
골목 입구 건물 외벽에 설치된 간판을 촬영한 사진. “고양이 골목인 고양?”이라고 적힌 분홍색 쿠션 위에 검은 고양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다.
사진: 극단 애인 제공

건어물 상가를 빠져나와 2차선 도로를 건너 부둣가로 향한다. 어두운 바다 위에 빼곡히 정박해 있는 어선들이 파도와 함께 출렁이고 있는 선착장에서 잠시 머물며 먼바다를 바라본다. 다시 길을 건너 항동 시장으로 간다. 이곳은 인근 지역 주민들이 작물을 가져와 팔고 사는 중앙 시장이라서 이른 새벽부터 오전에만 문을 여는 가게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어두운 시장이었지만 폐점한 점포들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 다행스러웠다.

시장이 끝나가는 길목에 목포진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있었다. ‘가파르지만 빨리 갈 수 있는 길’과 ‘돌아가지만 덜 가파른 길’이 있다는 안내를 받았고, 우리 일행은 빠른 길을 선택했다. 저녁이어서 덥지는 않았지만 한낮에 두 번이나, 게다가 이 저녁까지 하루에 세 번째 이 길을 올랐을 제작진을 생각하니 무척이나 고맙고 미안했다. 언덕길을 올라 목포진 객사에 다다랐을 땐, 공기만으로도 탁 트인 바다가 느껴졌다. 목포 구시가지를 내려다보며 감탄하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 출장 요리사가 아닌 - 출장 배달원이 ‘김 냉국’을 건네준다. 맑은 물에 부드러운 김과 아삭한 노각이 동동 떠 있는 ‘김 냉국’이 그야말로 생명수처럼 온몸을 깨웠다. 목포진에는 ‘소년 김대중 공부방’이 있었는데 계단이 있는 2층이었지만, 올가을 공연을 앞둔 우리 일행은 故 김대중 대통령의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그곳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기도 했다.

나무 정자의 난간 위에 김냉국이 담긴 유리병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 손에 들어올 만한 작은 유리병에는 분홍색 스푼이 꽂혀 있고, 검은 김과 하얀 노각이 떠 있는 냉국이 채워져 있다.
사진: 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 c. 박혜정

가파른 언덕을 내려와 ‘공중제B’ 샌드위치 가게로 안내를 받았다. 나지막한 집들이 나란한 골목에 집 앞까지 환하게 불을 밝혀 놓고, 대문 앞에 원목 탁자를 내어 우리 일행을 위해 문을 연 야외 심야식당, ‘공중제B’. 샌드위치 가게의 주인은 빨간색 원피스 차림에 해조류 목걸이를 한 홍조류, 김혜원(이구미) 작가다.

‘공중제B’에서 만든 식사의 모든 식재료는 관객들이 지나온 시장에서 구입했다며 가장 먼저 나온 음식은 우뭇가사리 묵 콩국이었다. 무향, 무색의 우뭇가사리 묵이 콩국의 단백함과 고소함을 더해주어 마음마저 정갈해지는 것 같았다. 뒤를 이은 상차림에는 소가 없는 샌드위치와 톳 카레, 파래 토마토 샐러드, 다시마 전, 팽이버섯 김밥이 차려져 나왔다. 김 냉국에 이어 우뭇가사리 콩국의 맛을 본 후 ‘식객’이 되어 버린 우리는 ‘와~ 맛있겠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입맛을 다실 틈도 없이 ‘고양이 골목인 고양’에서 각자 찾았던 숫자들과 연관된 카드가 주어진다. 그 카드에는 기후위기로 인해 수온이 상승하면서 황폐해져가는 바닷속 환경, 그리고 사라져가는 어종과 해조류에 대한 내용이, 우리가 찾은 숫자들로 이루어진 통계수치를 기반으로 적혀 있었다. 각자 뽑은 숫자와 관련된 내용을 소리 내어 읽고 나자, 그 내용에 등장한 해조류로 만든 음식 한 가지씩을 개인의 상차림에서 수거해간다. 눈앞에서 해조류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는 안타까움과 충격, 언젠가는 해조류가 사라질 수 있다는 미래를 지금 이 순간에, 이렇듯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되다니!

나무 식탁 위에 스테인리스 쟁반에 차려진 1인용 식사 몇 개가 놓여 있다. 정갈하게 음식이 담긴 아기자기한 접시들 사이에 커다란 숫자와 몇 줄의 글이 적힌 카드가 놓여 있다. 그 숫자는 ‘1/800’과 ‘2017’이다.
사진: 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 c. 박혜정

빼앗긴(그것을 빼앗은 것은 누구인가!) 해조류에 대한 낭패감은 남아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내내 반성과 걱정으로 변해갔다. 메인 음식을 먹고, 콤부차와 우뭇가사리 양갱까지, 완벽한 식사를 마치자 이내 김혜원 작가가 종이상자와 캔 등의 재활용품으로 만든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필자는, 해양 생물들이 나고 자라는 평온한 바다를 인간이 통제하면서 교환가치가 있는 김과 미역을 이식해 대량 생산한다는 사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교환가치가 떨어지는 우뭇가사리 등의 조류는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너무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여운이 다음날 목포를 떠나오는 순간까지 길게 남았다. 만호동의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한 현실 자각, 그리고 맛있는 음식까지, 거닐고, 먹고 사랑하게 해준 <공중제B>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작진은 설명보다는 각자의 느낌으로 목포를 만나기를 의도했을지도 모르지만) 공연 중에 만호동의 역사와 현재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한 것이다. 지형지물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았는데 질문을 해도 되는 건지 망설인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공연을 관람한다는 구실로 극단의 단원들과 함께 1박 2일 동안 목포에 머물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낯선 도시에서 연극인들을 마주친 일도 매우 기쁜 추억이 될 것이다. 자본과 문화가 포화상태인 서울에서 시작된 서울변방연극제가 이후에도 서울과 지방을 잇고, 변방과 중심의 구분이 무의미한 축제의 장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특별 공연을 준비해 준 제작팀과 창작진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한다.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각종 해조류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건 김혜원 작가가 종이상자로 제작한 커다란 그림책을 테이블 위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펼쳐진 그림책에는 목포역이라는 플래카드 아래 도시 전경이 펼쳐지고, 책과 이어지는 바닥에 나무로 만든 기찻길, 캔과 병뚜껑을 이용해 만든 기차가 놓여 있어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사진: 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 c. 박혜정
나무 테이블 위에 몇 개의 스탠드형 메모꽂이가 놓여 있다. 메모꽂이에는 말린 김, 미역, 다시마, 우뭇가사리 등 작은 해조류 조각들이 꽂혀 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내민 몇몇 손들이 그 주변에 있다.
사진: 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 c. 박혜정
2024 서울변방연극제 <[변방농장] 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
  • 일자 2024.9.7 ~ 9.8
  • 장소 목포 만호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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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재미있는 연극하고 싶은 휠체어 탄 사람. auleal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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