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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하지만 대단한 충청도式 싸이퍼

극단 코너스톤 <진천이 추천하는 진천 추천 연극 진천사는 추천석>

이의자

제258호

2024.07.25

물이 좋은 고장에서 곡식이며 열매가 달고 맛있는 건 당연지사다. <진천이 추천하는 진천 추천 연극 진천사는 추천석>(이하 <추천석>)은 진천이 그런 땅이라고 말한다. 극단 코너스톤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결말에 혼례 축하주로 관객들과 나누어 마시는 막걸리가 문화재청 지정 등록문화재 제58호로 등록된 진천 덕산양조장에서 직접 공수한 ‘덕산 생막걸리’이다. 특유의 진천 바이브, 충청도 사투리의 흥에, 남은 막걸리가 아까워 두어 잔 들이켰더니 살짝 올라온 취기를 더해, 막이 내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일면식 없는 동네 진천 가는 길을 검색하고 있으니, 일정 부분 성공이다.

살기에는 진천이 최고라는 의미의 생거진천(生居鎭川)은 지역 통합 농산물 브랜드로 쓰일 만큼 진천의 애칭이다. 생거진천에 사거용인(死居龍仁)을 더한 ‘살아서 진천, 죽어서 용인’ 설화는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 공연은 저승사자가 실수로 용인에 사는 추천석이 아닌 진천에 사는 추천석을 저승으로 데려오면서 벌어지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모험담이다. 한편으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용인 추천석의 혼이 빠진 몸에 진천 추천석의 영혼을 욱여넣으면서 벌어지는 코미디극이기도 하다.

하여 진천과 용인 사이 영혼과 몸이 각각 다르면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데, 이 지점에서 설화와 연극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설화에 여러 버전이 있으나, 통상 살아생전 진천에 살았으니, 죽고 살아난 뒤에는 용인에 산다는 해석이 우월하다. 하지만 연극은 그와 반대로 진천 추천석의 원대로 계속 진천에 살되, 진천에 무덤이 있으니 사후에는 후손들의 다툼이 없도록 몸은 고향인 용인에 묻히도록 하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철희가 충청도에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건 배우 시절, 충남 조치원읍을 배경으로 햄릿을 각색해 벽산희곡대상을 받은 <조치원 해문이>(2014)부터 알려진 바이다. 하여 일정 부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생거진천에 사거진천이라니, 이런 식의 결론은 편파적인 구석1)이 있다.

<추천석>의 공연 사진. 무대에 푸른 조명이 드리우고, 염라대왕과 그의 수하들이 모두 오른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인상을 쓰고 있다. 염라대왕은 빈티지한 무늬의 반소매 셔츠를 입고 흰색 바지를 입었다. 그의 뒤에 나란히 선 세 명의 수하들은 다리를 구부려 몸을 살짝 낮추고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추천석이 이승으로 돌아가기 전 염라대왕이 충청도 사투리를 물어보는 생뚱맞은 대목이 나온다. ‘대간하다’. 고달프고 고단하고 녹작지근하다는 의미로 죽을 듯이 힘들다는 뜻의 충청도 방언인데, 이 말을 관객들이 충분히 알아듣게끔 찬찬히 짚어가며 넘어간다. 뭔가 미심쩍다 싶었는데 용인 추천석을 매장하기 직전, 상여에서 겨우 되살아난 추천석의 이후 행보가 기가 막힌다. 용인에서 부활한 추천석이 용인 가족의 만류에도 혈혈단신 진천으로 오는 여정이 금의환향은커녕 지나치다 싶게 대간한 게 아니다. 숲에서 길을 잃고 짐승에게 쫓기고 굴러떨어져 다치고 죽을 위기를 넘겨 피신한 곳이 도둑 임꺽정 소굴이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선이자로 옷도 홀랑 빼앗기고 거지꼴로 겨우 진천에 도착한다. 하지만 두 모녀만 남은 집을 우습게 보는 사내들 등쌀에 택견 고수가 된 딸에게 당장 얻어맞기 일쑤요, 하필 남편 사십구재(四十九齋)를 마치고 온 아내한테도 동네 양아치 취급을 받으며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아내는 남편이 구구절절 사연을 풀고 추억을 되새김질해도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그러다 갈라지고 굳은살이 박인 손을 맞잡고 나서야 남편을 꽉 안아준다. 집으로 오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노동 한 번 해보지 않은 용인 진천석의 야들야들한 손이 억센 손으로 바뀐 것이다. 한겨울 농한기가 아닌 이상, 몸이 준비되지 않으면 농사꾼으로는 무덤에 있으나 눈앞에 있으나 쓸모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손길이 88번 닿아야 쌀 한 톨이 여무는 농사를 지으려면 포클레인 같은 손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추천석이 남의 몸을 입고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은 대견하고 대간한데, 늘 다른 이의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기 위해 단련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코너스톤이 해석한 추천석이 편하고 안락한 용인이 아닌 사서 고생하는 진천을 택한 바,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마무리는 소극장 무대를 마다하지 않는 배우들에 대한 응원과 격려이기도 하다. 무대를 가운데 두고 관객들이 사방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의상, 분장, 소품, 음향을 거의 쓰지 않는 데다 등퇴장 없이 120분을 버티는 공연을 보름 일정으로 소화하는 배우들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농산물로 치면 당도 13Brix 이상 ‘생거진천 덕산농협 꿀수박’인 셈이다.

<추천석>의 공연 사진. 저승사자와 저승사슴, 저승사자가 나란히 서 있다. 가운데 선 저승사자는 정면을 바라보고 왼손으로 머리에 붙인 형광 노란색 헤어피스의 끝자락을 들어 올리고 미소 짓는다. 그의 좌우에 선 저승사슴, 저승사자는 무릎을 살짝 굽히고 각각 자승사자에게 등을 보인 채 정면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연극 시작을 앞두고, 배우들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진천이 추천하는 진천 추천 연극 진천 사는 추천석 용인 사는 추천석’을 같이 따라 부르며 슬슬 시동을 건다. 라임이며 플로우가 완전 랩이다. 120분 동안 배우들은 링에 오른 복서들처럼 퇴장하지 않고 무대 위 의자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정도로 이승과 저승과 용인과 진천을 오가는 대장정 연기에 몰입한다. 소품이나 세트가 없는 빈 무대는 오롯이 배우들이 채워야 할 몫이다. 출연 배우 10명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경연하듯, 경쟁하듯 진기명기에 가까운 재기와 단합된 호흡을 보여주니 두 번 보고 알고 봐도 생면부지 진천을 고향 삼은 듯 쑥 빠져든다.

첫 공연 볼 적에 지하 소극장인 여행자극장이 진천실내체육관도 아닌데 어찌나 배우들이 소리를 질러대는지 귀가 멍멍한 와중에 조영규 배우(추천석 역) 허리에서 허리띠가 쭉 빠진다. 연기인지 애드리브인지 구분이 가지 않다가 일주일 뒤 공연을 다시 보고서야 당시 배에 얼마나 힘을 줬는지 벨트가 끊어진 우발적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염려했던 대로 배우들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섞여 나온다. 진천과 용인, 선과 악, 극과 극 1인 2역을 맡아 정신이 없는 조영규 배우는 진땀이 반소매 셔츠의 소매 아래로 흘러 두 팔이 기름칠을 한 듯 번질번질하다. 포스터만 해도 머리카락이 있건만, 프로레슬러 마냥 머리를 박박 밀고 웃통을 벗어젖히며 무대와 객석을 오가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정홍구 배우(용인 아들 역)가 젊은 축에 속해 목청이 견디는 편이었는데, 등허리 춤에 붙인 파스 크기가 저번보다 좀 더 커진 것도 같았다. 울고 웃기고 들었다 놨다, 버라이어티 쇼 같은 연극이 끝나니 장마와 폭염을 더해 배우들이 지칠 법도 하지만 본인의 이름을 딴 세계 최고 난도의 도마 기술 ‘양1’을 성공한 체조선수 양학선인 양 이 어려운 걸 오늘 또 해냈다는 자부심이 관객을 마중 나오는 얼굴에 가득하다.

진천을 대놓고 홍보 및 응원하는 <추천석>이 진심을 다하는 연극배우를 위한 자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노심초사 추천석을 도와 물꼬를 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저승사자들이 마침내 본업으로 돌아가기 위해 명부를 뒤진다. 이때 나오는 이름이 조치원에 사는 이성국이라, <조치원 해문이>의 아비 되는 자이다. 이로써 10년 세월을 두고 초심을 회복하는 이철희의 의도를 확인한 셈이다. 어쩌면 다음 작품에서는 작가이자 연출 이전에 연극배우였던 이철희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에 버금가는 충청도 싸이퍼2) 세계관의 새로운 서막이다.

<추천석>의 공연 사진. 흰 반소매 셔츠와 체크무늬 바지를 입은 추천석이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의 뒤편으로 다른 이들이 춤을 추거나 뛰고 있다.

[사진 제공: 코너스톤/ ⓒ이원호]

극단 코너스톤 <진천이 추천하는 진천 추천연극 진천사는 추천석>
  • 일자 2024.7.4 ~ 7.21
  • 장소 여행자극장
  • 작/연출 이철희 출연 조영규, 곽성은, 윤슬기, 한철훈, 정홍구, 백익남, 황영희, 권겸민, 심완준, 이강민 조명디자인 신동선 음악 이승호 작창 장서윤 안무/움직임 이경구 사진/그래픽 이미지 작업장 조연출 한승현 조명OP 김혜주 기획 임희연 주최/주관 코너스톤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진천덕산양조(주)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08211
  1. 경기도 메모리 용인 편(memory.library.kr)에서는 이 이야기에 대해 ‘용인 추천석은 재산과 땅이 많았고 아내도 더 젊었다. 추천석은 이렇게 된 이상 용인에서 새 삶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이내 곧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석을 싣고 있다.
  2. 싸이퍼란 래퍼, 비트박서, 브레이크 댄서들이 모여서 즉흥적으로 음악을 함께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싸이퍼 공연에는 정해진 공통 주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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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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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산재일기>(23.04)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이 의자는 산재 앞에 누구도 제3자일 수 없다는 경고인 동시에 관객의 시선이 관습에 머물지 말라는 의도라고 봤다. 연극이 동사라면 ‘이 의자’는 무대에서 말하는 순간 ‘잇자’가 될 수도 있다. gubos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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