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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기체는 머리 부분이 반짝인다

화이트 리버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 노트>

심세연

제258호

2024.07.25

“유기체는 열과 빛의 근원을 향해 움직인다. / 일부 유기체는 친구들을 향해 움직인다.”1)

계미현의 웹 시집 『현 가의 몰락』은 총 10편의 시와 시인의 말, 두 편의 리뷰, 번역가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시 중 하나인 「민주의 오전」에는 ‘민주’라는 이름의 개미가 나온다. 물론 인간들이 그를 개미라고 부른다. 민주의 친구 중에는 ‘마고론’을 쓴 ‘선린’이라는 비평가가 있다. 마고는 「마고의 티셔츠」라는 시에도 등장한다. 마고의 티셔츠는 아마 마고가 가진, 혹은 마고가 입은 티셔츠일 것이다. 그곳에는 “IN 2006, BEYONCE SAID “TO THE LEFT, TO THE LEFT” AND MY POLITICAL COMPASS WAS BORN”2)이라 쓰여 있다고 시의 각주는 말하고 있으며, 각주의 발화는 마고의 발화일지도 모른다.

열과 빛의 근원은 어디인가? 친구들을 향해 움직이는 것과 다를까? 나는 극 중 언급되는 시인의 말을 들으며 어두운 시간대, 가로등에 잔뜩 몰려 있는 날파리들을 떠올렸다. 날파리는 가로등을 향해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어떤 날파리들은 그 빛을 반사하여 반짝일 수도 있다. 날파리들은 열과 빛의 근원과, 친구들을 헷갈린다.
따라서 구분된 서술을 마주하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게 된다.
낭독극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 노트>의 공연 사진. 초록 커튼을 배경으로, 붉은 옷을 입은 세 배우가 나란히 희곡집을 펼쳐 들고 앉아있다. 희곡집은 흰색 바탕으로, 앞표지에는 빨간색, 주황색, 파란색, 검은색의 크기가 다른 눈 모양 이미지가 겹쳐져 있고,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 노트’라 쓰여 있다. 희곡집의 뒤표지에는 ‘미현은 대통령을 향한 복수를 꿈꾼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가장 왼쪽의 배우는 반소매 아노락 상하의를, 가운데 배우는 나시 상의와 봉제선을 따라 흰 선이 하나 그어진 긴 기장의 하의를 입었으며, 가장 오른쪽 배우는 끈나시 원피스를 입었다.

미현은 대통령에게 복수하고 싶다. 미현이 하고 싶은 복수의 방식은 대통령의 가발을 벗기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암살당한다. 미현이 채 복수를 하기도 전에 대통령은 죽어 버린다. 미현은 따라서 암살자를 찾아, 무엇이 성공한 복수가 될 수 있을지를 묻기로 한다. 그렇지만 낭독극을 따라가다 보면 그래서 미현이 하고 싶은 일이 정말로 복수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과받는 것인지 조금은 헷갈리게 된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사과받고 싶은 마음은 다르다. 다른가? 다르다는 것이 이 극의 전제이고, 출발이다.
그러나 구분된 서술을 마주하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게 된다.

사과받고 싶은 동시에, 복수하고 싶을 수 있다. 모든 사과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떤 사과는 복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는 것이, 대화를 요청하는 사과, 장을 열기 위한 사과와 같은 선상에 놓이기에는 터무니없이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사과를 하고 싶은 사람의 사과도 사과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복수가 인정되고 이해되는 것이기를 바란다.
사과와 복수의 관계를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말하자면 둘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복수를 사과로 아득바득 우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달래기 위해,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야, 라고 해줄 수 있겠다.
한편, 미현이 극 중의 마지막 부분에서 선오를 떠나는 것이 나에게는 일종의 복수로 읽혔다. 선오와 연애, 동거 관계에 있는 미현은 선오가 마고와 바람이 났다고 생각한다. 확신하지는 않는다. 의심한다. 오해한다. 미현은 선오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었고, 그것은 정말로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너무 피곤했던 미현은 그것을 택하기보다는 사라지기를 택한다. 미현은 선오에게 최고의 복수를 한다.
다만, 최고의 복수는 성공한 복수다. 미현은 선오를 떠났기 때문에 자신의 복수가 성공했는지 마지막 막에 올 때까지 알 수 없다.

낭독극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 노트>의 공연 사진. 서로 팔짱을 낀 두 배우의 팔 부근을 크게 확대하여 찍은 사진이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사과받고 싶은 마음에 사랑은 기본적으로 필요했던, 혹은 필요한 것이 된다. 어떤 기대가 있었기에 실망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실망의 형식이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라면 복수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미현과 3년간 만났지만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키스할래?’를 묻는, 미현을 사랑하는 선오의 마음은 극 중에서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음을 ‘키스할래?’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선오는, 자신이 흥얼거리던 노래가, 그가 미현을 처음 봤을 때 미현이 그에 맞춰 춤을 추고 있던 바로 그 노래라는 이야기마저 똑바로 하지 못하는 선오는, 답답한 부치다.
따라서 미현의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하다. 언제나 행동하는 쪽은 미현이다. 미현이 복수를 다짐하는 쪽이고, 미현이 마고와의 관계에서 좀 더 명확한 감정을 드러내는 쪽이고, 결국 미현이 선오를 떠나는 쪽이다. 어쩌면 미현은 선오에게 복수를 해야 할지 사과를 받아야 할지 헷갈리고 있으며, 하나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믿음은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도 같다.

김선오는 시집 『세트장』의 「농담과 명령」에서 “불타는 거랑 녹스는 건 사실 같은 화학반응이야./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야.// 인간이 그렇게 말하자./ 어떤 유령은 불타는 숲의 입구에 서 있고, 어떤 유령은 녹슨 자전거를 타고 어두운 해안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3)라고 한다. 유령들은 빛과 열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들이다. 노랑이나 하양을 사전으로 검색한다. 유령은 불타는 것이고 녹스는 것인 동시에 불타는 것을 보고 녹스는 것을 타는 존재들이다.

낭독극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 노트>의 공연 사진. 나란히 앉은 세 배우의 상반신을 정면에서 살짝 빗겨 난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 카메라에 가장 가까이 앉은 배우는 희곡집을 펼치고 낭독하는 중이고, 가운데 앉은 배우는 눈을 감고 있으며, 카메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배우는 가운데 앉은 배우를 바라본다.

유기체는 복수의 방향과 사과의 방향을 잘 안다. 동시에 헷갈리기도 한다. 확신을 갖기 때문에, 유령처럼 둘을 중첩 상태에 두지 않거나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 유령들은 잘 몰라서, 그것들을 가지고 논다. 극의 막 이후를 상상한다. 미현과 선오는 다시 만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때 정말로 유령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의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개미의 머리가 빛을 받아 반짝인다. 날파리의 머리가 빛을 받아 반짝인다.



[사진: 혜영(사진관 언니와호랑이)]

화이트 리버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 노트>
  • 일자 2024.7.13 ~ 7.14
    장소 salt, RTR Lounge
    극작 및 연출 연혜원 출연 계미현, 김선오, 연혜원 포스터 촬영 및 디자인 오미자(황윤하) 메이크업 오미자(황윤하) 의상 연혜원 기록사진 혜영 기록영상 오유진 공간지원 salt 도움주신 분 남선미, 박이영글, 배나무 주관 연혜원 제작 화이트 리버
    관련정보 https://www.instagram.com/p/C8TivtoJ0RR/?igsh=MWVrdXh1ZjVnbGd5cg%3D%3D&img_index=1
  1. 계미현, 「시인의 말」, 웹 시집 『현 가의 몰락』, 2023. 해당 극에서는 17막 암전 이후 활용된다.
  2. 계미현, 「마고의 티셔츠」, 위의 책.
  3. 김선오, 「농담과 명령」, 『세트장』, 2022, 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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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연

심세연
문학과 연극을 포함하는 예술 텍스트에 관심이 있다. celbb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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