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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라는 수려한 레퀴엠

즉각반응 <슈미>

임승태

210호

2021.11.25

*[주의] 이 글은 등장인물의 자살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왜 슈미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원작의 이름과 닮지도 않았고 한국인 이름으로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이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 이름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참고로 국내에 등록된 이름 중 ‘슈민’은 있어도 ‘슈미’는 아직 없다. namechart.kr 참조) 공연에서 이 질문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슈미란 이름은 슈미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나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했다고 믿는, 그리고 그것을 느끼려고 한국으로 돌아온 슈미이기에 이 이름은 스미, 혹은 수미(秀美)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원작의 헤다에서부터 슈미에 이르기까지 이 인물에게 분신과도 같은 중요한 소품 권총을 생각할 수 있다. 슈미와 애경의 대화 속에서 애경은 어릴 적 슈미를 슛미(shoot me)라고 놀렸다고 하는데, 만약 애경이 슈미의 아버지 자살 이후에 이렇게 불렀다면 참으로 몹쓸 농담이고, 그 이전이었다면 애경에게는 슈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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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권태는 슈미를 설명하는 중심 키워드다. 슈미는 지루함을 달랠 두 가지 장난감을 가지고 있었다. 피아노와 권총은 겉보기에는 상이하지만 둘 다 해머를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하나는 해머로 강철 현을 때려 음악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해머로 화약을 터트린다. 특히 슈미에게 피아노와 권총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물건이다. 어릴 적 슈미가 늘 연습하던 곡은 모차르트의 레퀴엠(“라크리모사”)이었다. 슈미의 아버지가 좋아했던 곡이었다. 슈미는 자기도 모르게 이 곡으로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을 구했고,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슈미가 같은 곡을 치고 있다면 이제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피아노는 슈미와 경만의 신혼집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끝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피아노를 기다리던 슈미는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장난감을 꺼낸다. 원작에서 권총은 헤다의 아버지 가블러 장군이 남긴 거의 유일한 유품이다. 죽는 순간까지 아들을 원했던 미련을 표현했던 걸까? 같은 총이지만 결코 군대를 이끌 수는 없는 헤다에게 총은 그저 자기를 해침으로써 자기를 지키는 도구로 쓸 수 있을 뿐이다.
슈미의 권총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한층 더 짙게 드리워 있다. 이 총은 슈미의 부모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사용했던 것이고 슈미는 그것을 부모님이 자신을 ‘긍정했으나 사랑하지는 않은’ 증거물로 간직하고 있다. 부모의 사랑을 얻지 못해 생긴 슈미의 결핍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것도 이러저러한 허물이 많은 범인(凡人)들로부터 결코 채워지지 못한다. 슈미 주변의 세 남자는 모두 자기 방식으로 슈미를 ‘사랑’하지만 그 누구도 슈미를 만족시킬 수 없다. 수컷으로서 특별한 지위를 확보하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하는 도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슈미와 ‘자기애’를 공유하는 유완도 결국은 이기적인 방식으로 슈미를 영원히 간직하려 했기에 슈미는 그들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 슈미가 친절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만을 남편으로 선택한 것 역시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서울에 돌아가서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세우는 데 가장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 사람이 경만이었을 뿐이다. 문제는 “나 자체가 유토피아”라고 선언하는 슈미의 자기애가 구체적 내용을 (유토피아란 말의 본래 뜻처럼) 결여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슈미의 자기애는 사실 지독한 외로움에 대한 절박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무리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허하며, 그러하기에 삶이 지루하다. 마치 햄릿의 단검과도 같은 슈미의 권총은 권태를 끝낼 수 있을 뿐 결코 그것을 이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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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연출가 하수민은 슈미의 권태와 무기력을 입센의 헤다처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의 결과로 제시하기보다는 개인 심리의 차원에서 원인을 찾는다. 비록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슈미 주변의 두 학자가 하필이면 정신의학 전문가인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원작으로부터 한 세기 이상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인물이 처한 상황이 변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조정은 정당하다. 슈미는 교육, 직업 선택, (피)선거, 그리고 결혼과 출산에 있어서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는 우리의 동시대인이기에 그의 권태는 헤다와 같은 이유일 수 없다. 물론 우리 시대 여성들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원작에 대한 또 다른 재창작의 방향일 수 있고 이 경우 입센의 사회문제극적 성격을 드러내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입센이 후기에 접어들면서 사회문제보다는 개인에, 그것도 철저히 고립된 인물에 더 주목했고 헤다가 그 대표적 인물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 시대 각색이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하는 것 또한 입센의 작의를 따르면서 원작을 신선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원작에서 헤다는 마지막 순간 격렬한 춤곡을 연주한다. 자신의 삶에서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희열이 아쉬워서였을 수도, 죽음 이후에는 삶에서 얻지 못한 기쁨을 누리고 싶은 바람이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피아노가 오지 않은 슈미의 처지는 조금 더 딱하다. 내일은 과연 올까. 에스트라공에겐 목을 맬 끈이 없지만 슈미에게는 확실한 게 있다. 피아노 기다리기를 멈추고 슈미는 허공에 손을 올려 가상의 건반을 누른다. 소리는 슈미만 들을 수 있다.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보아 그리 격렬한 춤곡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 연주로 슈미는 유완의 허망한 죽음을 애도하고,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곡조가 어떠하든 이 곡 역시 레퀴엠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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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의식하는 즉시 사라져 버리는 찰나의 순간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가 겹쳐서 서로 경합하거나 모순을 이루는 두꺼운 영역이기도 하다. 입센의 ‘고전’을 현재화한다는 것은 바로 이 양방향의 시간성을 잠시나마 무대에 붙잡아 두는 일이기에 흥미롭고 또 어려운 일이다. 입센의 원작에서는 두 학자의 연구 분야가 과거와 미래를 대표한다. 테스만은 과거 중세 유럽의 가내 수공업에 대해 연구하는 반면, 레브보르그는 미래 문화를 예측한다. <슈미>에서 과거와 미래의 경합은 공연 텍스트 전반에서 더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슈미와 경만 부부의 신혼집은 서울의 어느 고급 고층 아파트다. 비록 무대가 긴 테이블과 샹들리에, 약간의 책과 꽃을 제외하면 거의 비어 있어서 그곳이 일반인에게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러운지는 전적으로 관객이 상상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경만이 너무나 잘 사용하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경만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커튼을 치고 닫으며, 현관문을 열고, 음악을 틀고 끈다. 그에 비해 아이보리 색상의 의상을 입고 테이블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슈미의 모습은 신고전주의 시대의 여인상 혹은 여신상을 연상시킬 만큼 고풍스럽다. 경만은 슈미의 모습을 조각으로 남기고 싶어 할 만큼 슈미의 고전미를 알아볼 수 있지만, 슈미가 경멸하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시작부터 어긋나 있다. 유완은 원작의 레브보르그 만큼이나 미래지향적 인물이다. 유완의 새 원고는 과학 기술이 인간에게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생각을 빅데이터화해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걸 다시 두뇌에 재입력해서 정신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유완이 예측한 미래다. 그런데 유완은 도규를 통해 소개받은 VVIP 클럽에서 제공하는 메타버스(Metarverse) 세상에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이미 구현되고 있음을 경험한다. 문제는 유완이 예견한 인간 해방이 아바타를 통한 공개 자해와 자살을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신의학의 과거를 비판하고 새로운 기술로 인간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낙관하던 학자가 마주한 것이 프로이트의 타나토스, 즉 죽음 충동이었을 때, 그리고 그 자기 파괴적 충동에서 자신도 환희를 맛보았을 때 유완이라는 인물의 에너지는 사실상 소멸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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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슈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겹치고 충돌시키는 전략으로 「헤다가블러」를 우리 시대로 불러왔다. 그런데 갑작스레 등장한 메타버스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다소 엇갈리는 듯하다. (필자를 포함하여) 여전히 메타버스가 낯선 사람들에게는 유완의 반응이 충분히 와닿지 않고, 반대로 이미 메타버스 세계를 경험하고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연에서 다룬 메타버스가 너무 피상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진짜 악’, ‘공포’ 등 부도덕한 방식으로 다루어졌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도 창작진이 ‘갑분싸’를 무릅쓰고 메타버스를 선택한 취지는 얼마간 짐작된다. 19세기 살롱 문화가 우리 시대에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무대에서 재현하거나 심지어 언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던 건 아닐까. <오징어 게임> 속 VIPS가 <슈미>의 VVIP와 비슷한 쾌감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이 문제는 재현의 윤리가 아닌 흥미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사진제공: 즉각반응]

즉각반응 <슈미>
일자
2021.11.6 ~ 2021.11.14

장소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원작
헨릭 입센
재창작·연출
하수민
출연
최희진, 장재호, 김시영, 권일, 조형래
드라마터그
신빛나리
무대미술
남경식
음악
지미세르
조명
김소현
의상
이윤진
안무
이세승
조연출
황준영
무대감독
이뮥수
오퍼레이터
신지언
포토그래퍼
이상윤, 박원민
그림
신혜진
홍보
안선정
제작PD
차정훈
제작
즉각반응
주관
컬쳐버스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1009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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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태

임승태
평론과 드라마터지 작업을 오가며 말과 몸이 만나는 특별한 시공간을 탐구한다.
www.facebook.com/im.seung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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