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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엇갈리고 마주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

상상만발극장 <도덕의 계보학>

박상미

제203호

2021.06.24

<도덕의 계보학>은 상상만발극장의 스물한 번째 작품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 각자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믿음’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믿음의 기원’ 연작이다.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연극은 이들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전 작인 <스푸트니크>를 떠올리면 연출기법, 인물 설정이 오버랩 되기도 하는데, 이야기의 주제에 큰 변화가 있었고 연출도 세부적인 차이를 두었다. 중앙에 놓여 있는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객석이 배치되어 있어서 관객은 배우와 맞은편 관객을 함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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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관계가 하나의 방향성으로 쌓이는 인과관계가 아니어서 <도덕의 계보학>은 친절한 연극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섯 명의 이야기를 다시 직조해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기 때문에, 연극을 받아들이는 폭은 감동에서부터 지루함 사이에 다양한 파장이 된다. 연출이 의도한 대로 여러 겹으로 겹쳐진 일상의 작은 흔적만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관객은 각자의 해석과 판단으로 연극을 소화해낸다.
<도덕의 계보학>의 핵심이 되는 단어는 ‘교차성’이다. 한곳에 있다가 흩어지고, 다시 만나고 지나치는 삶의 무수한 다양한 결들의 교차성. 그러니까 각각의 개인이 시간과 경험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만들어낸 선이 (마주한 줄도 모른 채) 겹쳐지는 기묘한 경험에 가깝다. 배우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연기하지 않는다. 설사 그들이 같은 시간대에 겹쳐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마주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타인이나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지극히 단선적이고 외로운 듯 보이지만, 철저하게 세상 그리고 타인과 얽혀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장치로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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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역할에는 주어진 이름도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버이츠(Uber Eats) 배달을 하면서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A), 분쟁지역에 다니면서 의료 활동을 하는 의사(B), 20년이 넘는 동안 고등학교에서 일하며 스스로 죽는 순간을 선택하고 싶은 선생님(C), 학교폭력을 당하면서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기를 원하는 학생(D) 그리고 분쟁 지역주민들과 삶을 재건하려고 했지만, 반군의 유입으로 좌절된 후에 사회비평 잡지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하게 된 사람(E). B와 E는 분쟁지역에서 만났었고, E를 찾기 위해 B는 A를 만나게 되며 A와 D는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이고, D와 C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으로 이어지는 관계이다. C는 안락사를 위해 얼굴도 모르는 의사와 메일을 주고받는데 그가 바로 B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상황을 달리 해석한다면 관계도/ 교차지점은 다른 방식으로도 쓰일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서 어디에도 없지만, 분명 어딘가 존재했던 혹은 현재 진행형의 사건들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E의 이야기는 2015년에 발생했던 Charlie Hebdo(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슬람교를 풍자 만평을 실었던 잡지사에 무장괴한들이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해 인명피해가 컸던 사건이다. 이후 2020년 10월 프랑스에서는 본 테러 사건을 수업 보도 자료로 소개하며 언론의 자유에 대한 수업을 한 중학교 역사 교사 사뮤엘 프티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A와 D는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택배, 배달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장과 끊이지 않는 학교폭력 사건들의 소식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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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도덕을 이야기하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개인의 교차성이란 경험에 기초하는데, 그 경험이란 성별, 젠더, 성 정체성, 민족, 인종, 계급, 국가의 정치적 상황 등등 수많은 외부요인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서 내게 던져진 질문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정의와 도덕을 한 가지 결로 정리하거나 해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이 중 가장 오래 생각한 질문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C의 질문이었다.
“왜 운명은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의 의지는 받아들이지 않나요?”
내가 어떤 이유로든 생을 끝내고 싶은 의지의 상황과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타인)이 자신만의 이유로 생을 끝내고 싶다고 할 때의 순간의 무게를 상상했을 때, 전자의 상황보다 후자인 사랑하는 사람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에서 더 복잡한 감정이 실렸다. 내 의지를 인정하는 것과 타인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심연을 건너는 간극이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지 되묻게 된다. 우리는 이타성과 이기성, 그리고 개인의 의지가 여러 가지로 충돌하는 상황을 일상에서 때때로 마주한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여러 요인이 뒤엉켜진 총합의 찰나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도덕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연극 <도덕의 계보학>은 뚜렷한 메시지를 관객에 전달하기보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틈 사이에서 관객이 생각의 지점을 잡아내는 것에 집중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반추하며 풀어내 보고 싶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진 : ⓒ옥상훈]

상상만발극장 <도덕의 계보학>
일자
2021.6.4. (금) ~ 2021. 6.13. (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연출
박해성
배우
성여진 선명균 김훈만 신사랑 김슬기
무대
강지혜
조명
김형연
의상
홍문기
음향
목소
분장
이지연
조연출
공진화
영상기록
삼인칭시점
사진
옥상훈
홍보물디자이너
김먼지
홍보
임서영
제작PD
이시은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ages/Perf/Detail/Detail.aspx?IdPerf=257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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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

박상미
올해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축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다른 언어를 배워보고 싶어서 듀오링고로 (처음 배우는) 중국어와 (다시 배우는) 영어를 매일 10분씩 공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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