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의 역사, 아들(들)의 증언
[전문가 리뷰] <알리바이 연대기>
김옥란 _ 연극평론가
웹진 32호
2013.09.26
김재엽의 신작 <알리바이 연대기>가 국립극단 ‘젊은 연출가전’의 이름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국립극단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극장에서는 <개구리>가, 소극장에서는 <알리바이 연대기>가 이쪽과 저쪽에서 동시에 올라갔다. 박근형 연출의 <개구리>가 강한 정치 비판 주제로 공연 초반부터 언론에 오르내리...
<알리바이 연대기> 2013.09.03~15 | 소극장 판
김재엽 작·연출-
- 김재엽의 신작 <알리바이 연대기>가 국립극단 ‘젊은 연출가전’의 이름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국립극단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극장에서는 <개구리>가, 소극장에서는 <알리바이 연대기>가 이쪽과 저쪽에서 동시에 올라갔다. 박근형 연출의 <개구리>가 강한 정치 비판 주제로 공연 초반부터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논란이 시끄러웠다면, <알리바이 연대기>는 수면 아래의 깊은 물줄기의 흐름을 이루며 조용히 흘러갔다. <개구리>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자에 기대어 우리 사회의 ‘상징적 아버지’인 권력자 비판에 날선 독설을 뿜어냈다면, <알리바이 연대기>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실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김재엽 연출 본인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연이다. <개구리>가 저승에서의 두 시인의 논쟁이라는, 전통적인 문학적 장치인 우화와 풍자를 통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면, <알리바이 연대기>는 실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면서 더 우화처럼 느껴졌다. 신기했다. 실제 이야기이면서 우화가 환기하는 상상력의 힘, 전복적 에너지를 느끼게 했다. 한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나란히 올라간 두 공연을 지켜보는 일, 흥미로웠다.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 김재엽은 작가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김재엽 연출 본인의 아버지와 형에 대한 개인사와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김재엽의 아버지 김태용은(이하 존칭 생략) 1930년 일본 오사카 출생이다. 1945년 해방이 되어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의 고향에 돌아왔다. 그곳에서 같은 고향 사람인 박정희를 처음 만났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버지가 박정희를 세 번 만났던 실제 이야기다. ‘상징적 아버지’인 대통령과 ‘실제 아버지’의 역사를 대조하는 방식이 재밌다. 그리고 김재엽의 형 재진은 서울대 경영학과 83학번이고, 재엽은 연세대 국문학과 92학번이다. 재진과 재엽은 9년간의 나이 차이가 있고, 대학 83학번과 92학번으로 대략 10년간으로 묶이는 1980년대 학번의 대학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염상섭의 『삼대』처럼, 가족의 일대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는 방식은 작가들이 역사를 재현할 때 흔히 적용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같은 세대인 아들들은 그렇다 치고, 아버지와 아들들을 엮는 씨줄은 무엇일까? 아버지와 아들 세대를 단순히 나이순으로 사건을 나열하거나 혈연관계의 에피소드들을 집합시켜 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선택’하여 연대순으로 다시 기술하는 ‘연대기’의 방식으로 적겠다는 것은 김재엽이 이 공연에 분명한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재엽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알리바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다. 그런데 알리바이라니? ‘알리바이’라는 말은 범죄자의 수사현장에서나 쓰이는 말이 아니던가? 역사는 승자의 논리로 쓰인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알리바이 연대기’라는 말은 역사의 그 승리자들이 범죄자였다는 말일까? 이렇듯 작가가 던져둔 작은 화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최근의 역사 논란들 때문이다. 어떤 역사 논란? 중국이나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다. 고대사나 근대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최근 10년간,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30, 40년 전 이야기다. 최근 죽은 자들의 이름이 자주 들먹거려진다. 어떤 이름은 다시 불리어져 부관참시 당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름은 아예 머리뼈에 총탄 구멍을 드러낸 채 해골을 든 망령의 모습으로 서성이기도 한다. 아버지, 삼촌들의 역사에 아들과 딸들, 사촌들이 각자 딴말에 열심이다. 좋은 아버지였는지, 나쁜 아버지였는지, 각자 기억이 다르다. <개구리> 논란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김재엽은 이 틈새에서 묘한 구석을 찾아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아닌 ‘이상한 놈’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좋은 놈, 나쁜 놈, 곧 영웅이거나 악당이거나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상한 놈, 곧 거대 담론의 이데올로기에도 쉽게 수렴되지 않고 좌충우돌, 우왕좌왕, 불쑥불쑥 낯선 얼굴을 내미는 평범한 사람들, 너무 평범하고 하찮아서 누군가의 눈에는 우스워 보일 수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좋은 아버지도 아니요, 나쁜 아버지도 아니요, 이상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 김재엽의 신작 <알리바이 연대기>가 국립극단 ‘젊은 연출가전’의 이름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국립극단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극장에서는 <개구리>가, 소극장에서는 <알리바이 연대기>가 이쪽과 저쪽에서 동시에 올라갔다. 박근형 연출의 <개구리>가 강한 정치 비판 주제로 공연 초반부터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논란이 시끄러웠다면, <알리바이 연대기>는 수면 아래의 깊은 물줄기의 흐름을 이루며 조용히 흘러갔다. <개구리>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자에 기대어 우리 사회의 ‘상징적 아버지’인 권력자 비판에 날선 독설을 뿜어냈다면, <알리바이 연대기>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실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김재엽 연출 본인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연이다. <개구리>가 저승에서의 두 시인의 논쟁이라는, 전통적인 문학적 장치인 우화와 풍자를 통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면, <알리바이 연대기>는 실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면서 더 우화처럼 느껴졌다. 신기했다. 실제 이야기이면서 우화가 환기하는 상상력의 힘, 전복적 에너지를 느끼게 했다. 한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나란히 올라간 두 공연을 지켜보는 일,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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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 연대기>의 아버지는 극의 처음부터 “아버지는 분명 보통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라고 소개된다. 일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우리말을 몰랐다는 아버지, 일본식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영어 선생님, 평생 외국어 공부에 몰두하여 아들로부터 외국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는 아버지, “경상도 대통령”이 줄줄이 나온 경상도 한복판 대구에서 김대중 후보 유세장을 찾은 아버지, 무엇보다도 한국전쟁 당시 형 따라 군대에 입대했다가 겁이 많아 무작정 군대에서 도망쳤다는 황당한 이야기는 흡사 연극 <오장군의 발톱>의 오장군의 캐릭터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군대에서 탈영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 비밀을 숨기기 위한 황당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면서 국가와 민족의 단일한 거대 서사에 균열을 가져온다. 이데올로기 전쟁은 어떤 명분을 가져다 붙여도 성스러운 것이기보다는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극적 알리바이의 역사를 한국현대사의 독재자들의 역사에 대입하는 순간 이 공연의 희극적 장치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김재엽은 짐짓 작고 열등한, 우스운 이야기를 통해 거대 서사의 비극적 감정 과잉 상태를 비꼬고 있고, 비극적 파토스를 동반한 과잉 신화들의 비논리성과 허구성을 드러내며 가볍게 그것들을 뛰어넘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과 희극을 구분하는 기준을 우리보다 우월한 자를 모방하면 비극이고, 우리보다 열등한 자를 모방하면 희극이라고 했다. 물론 여기서 우월함과 열등함은 인물의 됨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극적 인물의 기능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희극이 평범한 우리들의 세계에 훨씬 더 가깝다. 같은 국립극단에서 올라갔던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나 <안티고네>에 비해 그리스 희극 <개구리>가 더 논란이 컸던 이유도 무엇이겠는가. 희극은 더 직접적으로 시시콜콜한 우리의 일상, 지리멸렬한 우리의 삶의 태도를 해부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알리바이 연대기> 또한 희극이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역사 속 영웅 혹은 악당이 아닌, 평범한 우리 아버지들의 작은 역사(들)을 다루고 있다. 다큐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굳이 이름 붙이자면 서사극적 희극이다.
김재엽은 말한다. “직설화법이 요구되는 시대에 우화를 꾸며내기보다는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을 만들고 싶다. 신화 속에서 꿈꾸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싸우기를, 예술이라는 타이틀로 포장하기 보다는 인문사회과학의 사유로 발가벗겨지기를 소망한다.”(프로그램북 작ㆍ연출의 말 중에서) 최근 젊은 연극인들에게서 역사와 정치의 화두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화와 풍자의 전통적인 문학적 방식 대신 젊은 연극인들은 직접적으로 다큐적 소재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판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출가 윤한솔과 김민정, 김재엽이 그렇고, 정치적 주제는 아니지만 다큐적 속성이 강한 다원 공연 방식을 선호하는 성기웅도 그 예이다. 김재엽의 “연극이 아니어도 좋다!”는 선언은 연극 바깥에서 연극의 틀을 새롭게 짜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연극 자체의 진부한 반복을 부정하고, 연극 자체를 부정하면서도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젊은 연극인들의 부정정신이 훨씬 더 신랄하다. <개구리>를 둘러싼 시시콜콜한 논란들을 훌쩍 뛰어넘는 도발을 보여준다. 김재엽은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새로운 판을 짤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이제야 김재엽이 연출가일 뿐만 아니라 작가로 보인다.
- 희극적 알리바이의 역사, 희극적 무대의 유쾌함
<알리바이 연대기>는 전체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6년 아버지가 일본의 소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당시부터 해방되어 고향인 구미로 돌아오던 때, 한국전쟁을 겪고, 4ㆍ19 이후 장면 정권 시절을 거쳐 장준하 의문사의 뉴스 보도가 흘러나오는 1975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2부는 전두환 정권 말기 대학생들의 분신 정국이 한창이던 1986년 대구의 한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린 형 재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1989년 고등학교 1학년이던 재엽의 학교에서 벌어진 전교조 사건, 1995년 대학 4학년이 된 재엽이 5ㆍ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한총련 집회에 참석했다가 전두환 집은 찾지 못한 채 어이없게도 서태지 집 앞에서 길을 잃은 일, 마지막 2004년 아버지의 마지막 병상을 지키던 시점까지의 일을 다루고 있다. 1부가 아버지의 연대기이고, 2부는 아들들의 연대기이고, 각각 박정희 정권 시절과 전두환ㆍ노태우 정권 시기를 초점화 하고 있다. 실제로 공연이 시작되면 1부에선 박정희의 초상화가, 인터미션 이후 2부에선 전두환의 초상화가 무대 한쪽에 걸려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공연은 1부에서 아버지가 박정희를 세 번 만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장준하의 죽음으로 끝나는 보다 정리된 연대기적 서술로 진행되는 반면, 2부는 재진과 재엽 두 형제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병상 장면 등이 순서대로 나열되면서 다소 집중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극 전체를 통해서 희극적 거리감이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다. 덕분에 2시간 반의 긴 공연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우선 아버지 역할의 남명렬의 진지하지만 속도감 있는 진행이 한몫하고 있다. “아버지는 분명 보통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라고 거듭 소개되는 아버지 역할을 남명렬은 완전히 우스꽝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유연한 연기로 관객들이 극중 이야기에 편안하게 빨려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서사적 양식 공연의 특성상 주인공인 아버지와 재엽 역할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1인 다역을 맡았는데,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형 재진, 재엽의 소년 시절 아역 역할을 맡았던 지춘성은 아이이면서 아이답지 않은 희극적 논평을 덧보태 공연이 윤택하게 흘러가게 했다. 예컨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 내용에 따라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해 핏대 올리며 갑론을박하는 큰아버지와 아버지 장면에서 지춘성은 “조선이나 동아나 똑같은 신문이 아니냐?”라고 현재 관점에서 끼어드는 재엽의 대사에 “믿기 힘들겠지만 예전엔 달랐어!”라는 희극적 논평을 아이가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답변하는 능청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 재진과 재엽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감에도 아이 역할을 지춘성이 동일하게 맡음으로써 극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그 외의 아버지와 재진과 재엽의 서사적 해설로 정리되는 촌철살인의 여러 대사와 장면들, 특히 가까운 과거인 1986년 이후 1995년 등의 역사적 시간들은 관객들이 직접 겪었던 시간들로 실제로 공연이 끝난 이후 각자의 역사적 순간들에 대한,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 세대의 역사적 순간들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들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다큐가, 관객들이 실제로 겪었던 역사적 시간들, 정권의 교체에 따라 교과서의 내용이 달라지고 신문에 따라 다른 역사가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겪고 보고 들은 역사를 똑바로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증언으로서의 역사, 곧 다큐멘터리가 극적 장치로 들어오는 타당성이 강력하게 환기되는 순간이다.
[사진제공 : 국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