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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넘어 같이 움직여볼까

신촌극장 <상자들의 지평선 X 이여진>

성수연(요다)

제262호

2024.09.26

종종 역사적 한계에 대한 복수는 이루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이제껏 쓰인 온갖 여성 혐오적 텍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나 그것들이 반복해서 상연될 수 있는 연극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희곡 속의 여성의 재현은 가끔 그것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나, 얼마나 더 여성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한다. 가끔 이런 화는 재창작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화를 동력으로 다시 읽기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의 종을 위해 복수하겠다”. 그 말을 발판 삼아 <상자들의 지평선>을 보면 이 연극 또한 일종의 복수로 볼 수 있다. 연극은 세 명의 배우가 희곡 세 편(이용찬의 「모자」(1958), 김자림의 「동거인」(1969), 주인석의 「통일밥」(1988))을 함께 분석하고 연기해보는 워크숍 과정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자신을 배우 A(권주영 분), 배우 B(김수안 분), 배우 C(이종민 분)라고 소개하는 그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분명하다. 한국전쟁 이후 쓰인 희곡에서 여성인물들이 어떻게 아들과 남편을 잃은 어머니이자 부인의 역할로 형상화되는지 하나하나 분석하고, 그 인물들이 어떻게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구성되었는지 반박하는 것이다.

<상자들의 지평선> 공연 사진. 무대 중앙에는 흰색 상자가 놓여 있고, 무대 뒷벽에는 누런색 종이상자를 여럿 쌓아두었다. 흰 상자의 주변 바닥에 흰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두 모서리에서 뻗은 흰 선이 각각 무대 뒷벽의 좌우를 향해 뻗어 있다. 종이상자들 위로 “향아: 당신의 귀를 흔드는 저 소리.... 알알이 사무쳐 오는 저 소리! 이제는 어서 어둡고 긴 역사의 골목을 빠져나오라는 저 소리!”라는 글자가 영사된다. 종이 상자들의 우측에는 검은 미사보를 쓴 배우 B가 뒤돌아 오르골을 쥔 왼손을 허공을 향해 치켜들고 있다. 상자의 좌측에는 무릎을 모으고 상자에 기대앉은 배우 C와 쪼그려 앉은 배우 A가 있다.

워크숍 과정에서 배우들은 희곡의 일부분을 발췌해서 장면을 연기해본다. 여성으로 패싱된 배우 B는 희곡에서 이성애 가부장중심 가정 내 어머니와 부인 역할의 여성인물을 연기한다. 남성으로 패싱되는 나머지 두 배우 A와 C는 희곡에서 아들, 옆집 남자, 남편, 아버지 등의 남성인물 역할을 연기한다. 그들이 분석하고 연기하는 세 희곡 속 인물들은 ‘전쟁 과부’, ‘전쟁 중 납북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 ‘북에서 돌아와 기억을 잃은 아들’, ‘상이군’ 등으로, 국가 분단의 상황이 인물로서 표상된 것이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국가적 비극으로 그리는 희곡들에서 장애를 가진 신체는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재활 되어야 하는 국가’1)를 상징하고, 이성애가부장중심의 가족관계는 인물들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그 안의 젠더 역할은 자연적인 것으로 재현된다.
연극에서 배우들은 특히나 희곡 속 여성인물들을 분석하는 데 집중한다. 그들은 희곡에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여성인물이 구성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들을 발췌해서 연습을 해본다. 예를 들면 휴전된 지 5년 뒤 발표된 이용찬의 「모자」에서는 납북된 남편 기다리는 혜원이 옆집 기영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과 그러한 혜원의 마음을 잘못된 것으로 그려내기 위해 그의 열 살 난 아들 종우가 아버지를 기다려야 한다면서 혜원을 단속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또 희곡이 쓰일 당시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지 극장 뒷벽에 PPT 슬라이드를 상영하며 작가가 어떻게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담아서 희곡을 썼는지 렉쳐 퍼포먼스 형식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배우들은 매번 희곡 속 여성인물의 편협한 재현에 실망하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 쓰였거나 여성 작가에 의해 쓰인 다음 희곡을 기대하지만 「동거인」과 「통일밥」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읽힌다.
희곡과 작가, 시대 배경의 분석을 바탕으로 배우들이 인물의 목표를 찾아나가는 연기 워크숍의 재현은 희곡 속 인물이 배우의 해석을 거쳐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배우들은 서로의 해석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고 수긍하기도 한다. <상자들의 지평선>은 이를 통해 옛 희곡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한계 및 지금과 그때의 시차를 보여준다. 이 시차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드러나며 이는 젠더가 어떻게 수행적으로 구성되는지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자들의 지평선> 공연 사진. 흰색 상자를 가운데 두고 세 명의 배우들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바닥에 그려진 흰 사각형의 세 모서리에서 흰색 선이 뻗어져 나와 무대 뒷벽의 좌우와 관객석 좌측을 향해 이어지고, 세 배우들은 각각 선위에 서 있다. 무대 뒷벽에 “(연출): 배우님들, 계속 가세요, 계속요.”라는 문장이 영사된다.

‘연기하기’가 아닌 ‘움직이기’

<상자들의 지평선>은 이렇게 구성된 젠더 역할과 여성인물의 재현에 대해 의심하고 비판한다. 배우 A, B, C는 세 희곡에서 젠더 역할이 얼마나 납작하게 그려졌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를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과장된 연기 방식을 사용한다. 흔히 말해 여성인물을 ‘여성스럽게’, 남성인물을 ‘남성스럽게’ 연기한다. 희곡 속의 여성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 B의 목소리는 고조되어있고 연기 또한 신파극의 배우처럼 다소 과장되어있다. 배우 B는 그가 상상하는 옛 여성들의 톤과 움직임 또는 그 당시 희곡이 연기되었을 법한 방식으로 인물을 구현한다. 이러한 과장된 연기는 배우의 몸에 입혀진 현재와 과거의 시차를 가시화한다. 감지된 시차로 인해 관객은 인물과 거리두기를 하게 되며 시대에 따라 변하는 젠더의 표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상자들의 지평선>은 원치 않게 젠더 역할을 굳히기도 한다. ‘여성’ 배우인 B는 연기 워크숍 중 여성인물을 담당하여 연기하고 희곡에 내재한 여성혐오에 대해 화를 낸다. ‘남성’ 배우인 C는 배우 B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맨스플레인’을 하는 ‘오빠’를 연기를 한다. 배우들은 패싱되는 젠더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장면은 배우들이 각자 패싱되는 젠더에 부여되는 역할의 상자를 뒤집어쓰고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과 ‘여성’ 배우의 당사자성에 기대어 연극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한 희곡에서 다른 희곡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배우들은 연극 속 희곡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는 배우 A, 배우 B, 배우 C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일상 속에서 겪고 느낀 젠더와 관련된 문제들을 관객 앞에 앉아 고백하듯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배우 B가 영화 촬영을 하면서 감독에게 납치되어 성추행을 당할 뻔한 사건을 이야기를 하거나, 배우 C의 어머니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이 상영되거나, 배우 A가 축구 동아리에서 공을 못 막아냈을 때 남자답지 못하다고 욕을 먹을까 봐 움츠러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그들을 ‘배우 A, B, C’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신체와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개별성을 드러내는 신체 사이를 오가게 하며, 과거의 젠더 문제에 현재의 젠더 문제를 포개어 볼 수 있게 한다.

<상자들의 지평선> 공연 사진. 어두운 무대 뒷벽에 수화기를 든 배우 A의 얼굴을 크게 클로즈업한 영상이 영사된다. “차라리 반에 남자애들만 있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라는 자막이 들어와 있다.

연극은 배우 C가 「통일밥」의 결말인 조모의 독백 장면을 함께 “움직여보자”고 제안하며 끝이 난다. 세 배우는, 남성작가에 의해 돌봄의 역할로 이용된 여성, 또는 그 반대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여성의 상징으로 해석했던 ‘조모’라는 인물을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여본다’. ‘움직여본다’는 연극 연습 중 흔히 쓰이는 말로 배우들이 몸을 움직이며 장면과 인물을 체화시켜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완전한 인물의 ‘됨’을 가정하는 ‘연기’와는 다르게 ‘움직여보는 것’은 인물과 배우의 개별성이 공존하는 사이의 과정이다. 배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여본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젠더 역할, 특정 정체성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현재 나의 개별적 몸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감각하며 움직여보는 것이다.
연극에는 ‘중립’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배역이 되기 위해 배우의 신체에서 개성과 특이성을 제거하고 ‘중립’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 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할까? 인물은 배우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신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작가가 그려낸 개념적 인물로만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현실 또한 그렇다. 누구든 보여주는/보이는 정체성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존재에게든 그것을 벗어나는 미끄러짐과 다양한 층위가 섞여 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방식으로만 ‘연기’될 수 없다. 각자의 상자 밖으로 움직여봄으로써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제공: 구르는돌프로젝트]

신촌극장 <상자들의 지평선 X 이여진>
  • 일자 2024.8.29 ~ 9.7
  • 장소 신촌극장
  • 작/연출 이여진 드라마터그 전지니 배우 권주영, 김수안, 이종민 영상보조출연 김덕자, 박세인 음향 목소 조명 서가영 영상 임지선 영상디자인 김여진 조연출 김종우 오퍼 윤소정 모큐 인터뷰이 권주영, 이종민, 김수안, 전지니, 이여진 엄마 요리 촬영 이종민 드론 비행 촬영 이여진, 권주영 드론 비행 편집 목소 제작 구르는돌프로젝트
  • 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theatresinchon/posts/1048547033633785?ref=embed_post
  1. 김은정 지음, 강진경·강진영 옮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후마니타스, 2022, 22쪽.
  2. 장기영, 『보란듯한 몸, 초과되는 말들: 배리어컨셔스 공연』, 책공장 이안재, 2023,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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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요다)

성수연(요다)
연극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수다스러운 관객을 지향합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걱정이며 항상 기억나지 않는 장면을 함께 보충할 동료를 찾고 있습니다. 가끔 요다라고도 불리며 공연을 보고 집가는 길 지하철에서 와랄라 하는 계정(@walalainthesubway)이 있습니다. claire08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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