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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를 이어가는 연습: 우리는 파도를 일으킬 것입니다

거부와 추동의 힘으로 ‘이후’의 이후를 다시 쓰기

이산

제262호

2024.09.26

2018년 연극계 미투 운동 이후 웹진 연극in에서는 해마다 ‘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 ‘미투 이후 2년, 무엇을 ‘더’ 바꾸어야 하는가’, ‘미투 이후 3년, 우리의 연극을 돌아보다’라는 기획을 마련해 연극 현장의 변화를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미투 이후 3년을 넘어서는 시점인 2021년, ‘‘이후’의 이후를 상상하기’라는 기획을 통해 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현실을 진단함으로써 도래할 연극의 미래를 그려보려 시도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극인 좌담에서부터 관객 설문조사, 제도권 시상제도 분석, 그리고 예술지원사업 선정작 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변화를 추적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 후 다시 3년이란 시간이 흐른 2024년, 연극in은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지금의 연극은 어떤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지, 이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듣고 말해보려 합니다. 이 연재의 마지막 기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지키는 연습으로, 우리의 경험이 구성해갈 새로운 세계를 기다립니다.

감기에 걸리기 쉬운 날씨가 왔네요. 담요를 덮고 잤는데도 아침에 몸이 으슬으슬해서, 겨울 이불을 꺼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눈을 떴습니다.
여러 번 썼다 지우고 다시 쓰는 글입니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너무 구체적이어서, 너무 딱딱해서, 너무 감정적이어서 지웠습니다. 사실 제가 쓰는 단어나 어투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으니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인데, 제 마음이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당신이 이 글이 가리키는 곳으로 와주기를 이만큼이나 바랍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한번은 못 이긴 척 와보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나의 경험과 당신의 경험이 가진 공통점을 길어 올려줄 수 있지 않을까, 다소 뻔뻔하리만치 기대를 품어봅니다. 단 한 방울이 길어 올려진다 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0년, 저는 한 성폭력 가해자에게 긴 편지를 씁니다. 저는 2013년부터 약 6년간 문래창작촌에 있는 마임 스튜디오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스튜디오의 설립자이자 30여 년 이상 공연자로 활동하며 노년을 맞이한 선배 배우의 성폭력에 항의하면서 스튜디오 활동을 그만두었습니다. 성폭력을 구성하는 그의 행위들, 저의 문제제기 후에 그가 보인 폭력성, 그럼에도 제가 여전히 품고 있는 고마움과 기대, 소통하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결국 관계가 단절되면서 느낀 좌절을 한 줄 한 줄 풀어냅니다. 저는 이 글을 가해자의 모국어를 구사하는 동료에게 번역을 부탁합니다. 제가 겪은 성폭력을 비롯하여 스튜디오 활동을 그만두기까지의 일련의 상황을 최대한 잘 설명해내고 싶습니다. 가해자가 모국어로 충분한 설명을 접하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리라 기대합니다. 이 편지는 얼마 후, 답신 없는 가해자 앞으로 보내는 손해배상 청구 소장의 내용이 됩니다.

2021년, 제출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민사소송 소장이 바다를 건너 가해자에게 도착합니다. 저는 그가 선임한 변호사가 작성한 답변서를 받습니다. 그의 행위가 성폭력에 ‘가깝다’고 말을 건넨 2019년의 어느 날로부터 2년이 꼬박 지났지만, 그의 생각은 여전히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그날의 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국으로 돌아가 버린 가해자가 배상을 하지 않아도 제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딱히 없었기에, 애초에 배상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해자가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나면 굳이 변호사 선임 비용을 들여 대응하기보다는 저에게 사과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는 한국에 오지 않을 작정으로 아예 무시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큰일입니다. 이 소송은 저에게 불리한 점이 꽤 많습니다. 패소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자 사과에 대한 기대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잠시 20여 년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2005년, 다니던 대학의 성폭력상담실에 앉아 있는 저는 성폭력 사건의 신고인입니다. 가해자가 계속 자신의 행위를 부인한다고 하여, 저는 가해자와 함께 조사를 받겠다고 요구합니다. 가해자의 진술에 제가 직접 반박을 해보겠다고요. 가해자가 원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얼굴로 하나님의 종이 될 가해자를 상담을 통해 바꾸어보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가 지지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가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설명할 의무를 피하도록 보호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가 제 이야기를 거짓말로 치부하며 설명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솟구칩니다. 나는 기억을 맞출수록 정신이 조각나는 느낌을 받으며 이 경험을 설명해냈는데, 너는 온전함을 누려? 질문에 답하는 것조차 거절한 채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아? 분노와 함께 말이 차올라 말하기의 힘을 경험합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기획단에 참여합니다. 말하고 듣다 보면, 나는 다 깨져서 사라져버리는 듯하다가도 쏟아진 물방울이 서로를 당겨 물웅덩이를 이루듯 슬며시 회복됩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카키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배우 이산이 양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뛰어가는 옆모습이다. 검은 배경에 조명을 받고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도드라진다.
<스턴트맘>(2023), 촬영: Harumi Kobayashi

저는 2006년부터 약 3년간, 2018년부터 또 3년간 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자 지원과 상담을 했습니다. 가해자의 반성을 끌어내는 최후의 수단으로 소송을 시도하는 내담자를 열 명이면 열 명 다 만류했습니다. 소송을 만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에 대한 기대를 만류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인정과 이익을 위해 피해자가 희생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가해자는, 성폭력 행위의 해악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라는 피해자의 말걸기에 응하지 않습니다. 대화에 응한다 해도, 결국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으로 다시 방향을 틀어버립니다. 그를 둘러싼 여성혐오 문화가 이러한 태도를 학습시키고, 독려하며 강화합니다. 이런 경우, 가해자는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내면화된 여성혐오에 맞서는 데 실패한 가해자는 피해자를 적으로 돌립니다. 피해자를 무시한 채 수사관이나 재판부, 직장 상사, 동료, 가족들에게 간곡한 반성의 표현을 내밀며 피해자를 공동의 적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가해자의 시도가 성공하면, 피해자는 ‘저렇게까지 노력하는데 받아주지 않고’ ‘서로 잘 얘기해서 해결할 일을’ ‘굳이’ ‘벌하려는’ 사람이 되곤 합니다. 반성을 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 피해자의 치열하고도 정확한 말하기가 아니라 제도적 강제력에 있다면, 그 반성 안에서 진심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애초에, 그 ‘진심’이란 무엇일까요. 괴로운 질문입니다.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 드시죠? 네. 저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대하고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나를 성적으로 이용해서 티끌 같은 자존감을 높여보는 데 ‘진심’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기를 요구했습니다. 피해자를 상담할 때 진중하게 내세우던 경험칙을, 막상 제 일이 되자 여름 홑이불 차듯 가볍게 차 버렸습니다. 궁금하실 것 같아 소송의 결과를 먼저 언급하자면, 그 소송은 제가 소송 비용을 받는 선에서 조정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제가 패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도 놀랍습니다. 금전적 보상이 전혀 없는 독립예술공간의 활동과 가해자의 경력만으로 위력을 설명해야 했고, 성폭력이 있었는데도 가해자의 연인 관계 요구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던 맥락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 무엇도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저와 가해자의 활동 기록과 주고 받은 자료를 찾기 위해 외장하드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습니다. 성폭력의 내용과 함께 당시의 생각과 느낌을 떠올리고, 그 후 변화한 해석과 현재의 상태에 관해 쓰고 또 썼습니다. 공연자 3인의 사실확인서, 활동가와 예술인 동료 10인의 탄원서, 스튜디오가 있는 문래창작촌 예술가 38인이 연명한 탄원서가 제출되었습니다. 변호사님의 의견서에는 그간 고민한 시간에 보람을 느낄 만큼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었습니다. 법정에 동행해주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준 동료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도움이 저를 지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탄원서와 사실확인서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고마움을 품고, 어떻게 이들이 저를 도울 수 있었는지 질문해봅니다. 그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저는 저 자신의 가치를 누군가가 매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연극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는 기회를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상태로 연극을 거듭할수록, 연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습니다. 연극이 무엇인지 모르고 연극을 하니, 연극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제가 하는 것이 연극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극하는 사람의 무리라고 생각했던 공동체에서 저는 자꾸 튕겨 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공연 날 함께 먹을 밥을 짓는 건 연극인데 성희롱에 불편해하는 건 연극이 아니어서, 술을 마시는 건 연극이 아닌데 술을 마시지 않고 연극을 할 수는 없어서 곤란했습니다. 저는 실력이 특출나지 않아, 관계 안에서 인정을 얻는 방법뿐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외면했습니다. 저를 도운 분들은, 어떻게 저를 외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저를 돕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저를 도왔을까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 답 역시 하나일 리는 없을 겁니다. 저는 그 힘의 출처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공유하고 싶습니다. 마침내 그 출처에 무심해질 때까지요. 성폭력에 대응하면서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을 좀 써보고 싶습니다. 다들 공감하던데. 다들 도와주며 살아. 다들 가만히 안 있던데. 저는 이 야심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4년, 저는 성폭력 예방교육 현장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말합니다. 피해자의 선택을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 저는, 제가 피해자의 선택을 좀처럼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저는 피해자가 늘 과도하게 책임을 짊어진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평화를 툭하면 내던지고 더 힘든 길을 선택할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이건 도저히 못 하겠다고 느낄 때 그 느낌조차 말하지 못하고 삼켜버릴까 봐 염려합니다. 방금 읽은 이야기도 그랬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시나요. 맞습니다. 저는 5년 전의 제가 자신의 평화를 조금 더 지켜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피해자를 봅니다. 이 바람과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어떤 연습이 필요한가요. 너무 선명한 것을 견디기 어렵나요, 아니면 모호함을 견디기 어렵나요. 너무 숨겨진 것이 많다고 느끼나요, 아니면 너무 많은 설명을 이해하기가 어렵나요. 더 연루되고 싶은데 가까워질 수 없어 힘든가요, 무관하고 싶은데 연루되어 버려서 힘든가요. 저는 당신이 쉼과 버팀을 반복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무너진 듯했다가 이내 흐르고 휘감아 파도를 일으키는 힘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것이 제가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뻔뻔한 기대를 놓지 못하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놓을 생각이 없는 이유입니다. 이 글 내내, 읽는 당신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견디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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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이산
배우, 성평등교육활동가. 플래이백씨어터, 마임, 연극을 거쳐온 배우이자 페미니스트 창작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가로 일한 경험이 있다. 현재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이며, 문화예술계와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성평등 교육을 한다. 최근 학위논문 「여성 연극인의 성폭력 대응 경험 연구」를 발표했다.

genderartl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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