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나’이니까

[무엇을, 어떻게, 왜] 이반지하 X 성수연

성수연(파이리)

제258호

2024.07.25

[무엇을, 어떻게, 왜]는 배우이자 창작자인 성수연이 진행하는 대화입니다. 동시대 창작자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작업하며, 그 일을 왜 하는지 들어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세계가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데,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저는 여러모로 저 자신을 재구성하여 저의 작업과 저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예술가와 그의 작업은 얼마나 분리되어 있을까요?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온 존재와 삶을 걸고 작업을 한다면, 우리는 그의 작업과 그를 어느 정도로 분리해서 이해해야 할까요? 그 예술가의 삶과 행보가 작업 자체라면, 우리는 그의 예술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요?
이반지하 님과 대화를 나눈 기록입니다.

프롤로그 - 아이스 브레이킹

이반지하
자, 우리 어떻게 아이스 브레이킹을 해볼까요? 긴장하신 것 같은데.
성수연
아직 믿기지 않아서요. 제 앞에 이반지하 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이반지하와 성수연,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웃는다.
공간 이곳저곳에 놓인 원탁과 의자 사이에서 이반지하와 성수연이 양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웃고 있다.
이반지하
어때요? 아이스 브레이킹이 좀 됐죠?
성수연
네. 감사합니다. (숨을 고르며) 저는 성수연이라고 합니다.
이반지하
네. 미리 공부를 좀 했습니다. 인터뷰 진행하셨던 것들도 다는 아니지만 봤고요. 저는 혼자 약간 수연 님과 친해져서 왔어요. 그래서 왜 긴장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성수연
제가 정말 정말 팬이라서 그렇습니다.
이반지하
그래요? 사실 요즘에 글 쓰느라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나고 있었어서, 약간 제가 다시 평민이 된 느낌이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이렇게 반겨주시니까 ‘그래, 내가 조금은 이름이 있는 사람이었지’ 싶기도 하네요.
성수연
아아악! 사랑해요!
이반지하
내려놓으세요.
성수연
네.

PART1_이반지하를 찾아서

1.

성수연
저는 2018년에 이반지하 님을 알게 되었어요. 분홍색 헤드피스를 쓰고 <레즈바에 온 작은 헤테로>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고 너무 좋아서 충격을 받았어요.
이반지하
감사합니다. 갤러리 합정지구에서 했던 퍼포먼스네요1).
성수연
‘이런 분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싶었어요. 저는 인터넷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고, SNS나 유튜브 등의 매체에도 적응이 느려서 잘 모르는 문화가 많았거든요.
이반지하
(웃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안 그래도 SNS를 잘 안 하신다고 해서 조금 놀랐고, 한편으로는 또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이 시대에 SNS를 안 하는 예술가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지? 저도 그게 고민 중 하나거든요.
성수연
2018년 당시 이미 이반지하 님의 존재를 알고 있던 주변 사람들한테 자주 물어봤어요. “이반지하 님은 요즘 뭐하셔?”, “이반지하 님은 작업 또 안 하셔?”, “혹시 주변에 이반지하 님이랑 친분 있는 사람 있어?”
이반지하
명성에 비해 공연을 많이 하지 않았거든요. 공연을 할 기회들이 생겨도 페이나 공연장 환경이 좋은 조건이 아닌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사실 굉장히 많이 가렸어요. 그게 섭외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재수 없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안 했으면 이렇게 오래 생존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또 공연을 많이 안 했던 다른 이유는 알바하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작업 고민하고 알바하면 하루가 다 가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사교 활동도 많이 안 하게 됐고. 그런 시기였던 것 같아요. 2019년 이전에는 확실히.
성수연
네. 그리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걸 조심스러워하신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이반지하
그것도 맞죠. 대 사회 커밍아웃을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성수연
그래서 오늘 오는 길에 문득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가’ 싶더라고요.
이반지하
진짜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 5, 6년간 엄청나게 변하긴 한 거예요. 예전에는 어디 기금 신청하느라 서류 쓸 때 ‘페미니즘’ 쓰면 당연히 떨어지는 거고, ‘퀴어’ 쓰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달라지긴 했어요.

2.

성수연
그러다가 2019년에 디지털 앨범 『이반지하』가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갑고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 당시에 매일 들었어요. 요즘도 자주 듣고요. 노래들 거의 다 외우고 있어요.
이반지하
다행이네요. 왜냐하면 정확히 그런 이유로 디지털 앨범을 냈기 때문에. 기존에 좋아하시던 분들이 계속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거든요. 디지털 음원을 유통하고 콘서트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다른 이유도 있어요. 당시 트위터 등에서 예전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성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하더라고요. 새로운 물결이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이전에 퀴어문화가 없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게 충격이었어요. 이건 남겨야 하는 일이구나 싶었어요. 레거시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데 기존 메인스트림 문화에서는 이런 걸 기록하지 않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한 것도 있었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앨범을 냈죠.
성수연
감사합니다. 행복했어요. 『이반지하』 앨범 자체가 정말 재밌는 거예요. 음악도 좋고, 가사도 천재적으로 웃기고, 노래마다 창법 바꾸시는 것도 정말 재밌고요. 같은 보컬이라고 믿을 수 없는 창법들. 약간 살짝 발을 담그고 어떤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한 판 놀아제끼는 신명마저 느껴졌어요. 「아버님」에서는 아예 역할 연기하시면서 노래하시고. 그런데 「생빠」는 또 약간 새침한 느낌으로 부르시고, 그러다가 바로 이어지는 「줄까말까」는 또 완전히 다르게 약간 메탈 느낌으로 부르시고.
성수연.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갈색과 노란색이 섞인 굵은 웨이브 머리에 검은색 긴소매 남방을 입었다.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오른손을 가슴에 올려 이야기하고 있다.
이반지하
오랜만에 음악 얘기를 하니까 되게 좋네요. 저도 리마인드 되고요. 맞다, 나 그런 것도 만들었었지, 나 노래도 됐었지, 이렇게.

3.

성수연
저는 작년에 어떤 연극을 하며 ‘누군가의 말을 반복해서 따라 함으로써 내 안에 그 사람의 길을 낸다’라는 개념을 걸고 장면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여러 사람들의 말을 수집해서 반복하는 수행을 해봤는데, 그때 「(삐-)는 이반이다」의 일부를 부르기도 했었어요. 공연에서는 감히 하지 못했지만요(웃음). 이반지하의 노래를 부르며 내 안에 이반지하의 길을 내보고 싶었어요.
이반지하
그것도 재미있었겠네요. 다음에라도 꼭 해보세요. 저도 누군가의 인터뷰들을 찾아보면서 그걸 혼자 반복해서 써보고 그런 적이 있어요.
성수연
언제요? 왜 그런 일을 하셨었나요?
이반지하
저는 원가족과 분리가 됐잖아요. 그건 물리적 분리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생활양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원가족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내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어떤 방식들.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면, 좋게 생각하면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만 사실 그럼 ‘나’는 없어지거든요. 새로 채워 넣을 것들이 필요했어요. 또 다른 이유로는, 아시다시피 예술가로 어떻게 살아남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창작자들의 인터뷰를 찾아 헤맸던 기간이 있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가 대체 어떤 인물을 모델로 삼았을지 기대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어쩌면 실망스럽게도, 그냥 인터뷰 많이 하는 유명한 작가들이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보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비록 구린 남성 예술가의 인터뷰일지라도 그 안에서 좋은 걸 내가 뽑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자아를 새로 써야 하니까.
성수연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등 쓰신 책들도 저의 자아를 새로 쓰기 위한 글이기도 했어요. 막연했던 제 고통들이 좀 더 구체적인 말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반지하
자꾸 글로 써보고 구체화해보는 일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참 어렵죠. 영원히 이중언어자인 거잖아요. 내 언어도 개발해야 하고, 세상한테 설명도 해줄 줄 알아야 되고. 그 설명을 못해서 정말 많은 소수자들의 자기 경험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 ‘목소리’라는 말을 쓰고요. 듣지 못한 목소리.

PART2_이반지하라는 장르

1.

성수연
이 코너를 여는 머리글의 마무리를 이번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냥 ‘이반지하 님과 대화를 나눈 기록입니다’로 할지 현대미술가, 작가, 음악가, 다매체 예술가 등 홈페이지2)나 기존에 소개된 역할들을 다 나열할지.
이반지하
그러면 진짜 없어 보이더라고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더라고요(웃음). 시대별로 혹은 정권별로 예술계에서 많이 쓰는 용어가 있는데, 박근혜 정부 땐 ‘융복합’이었어요. 그때 정말 모든 지원사업에서 융복합 이야기를 하는데, 진짜 융복합 예술가는 좋아하지 않더라고요(웃음). 진짜로 다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믿지도 않아요. 요새는 쉽게 말할 땐 현대미술가와 작가 정도로 추려서 말해요. 다매체예술가라고 하면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아주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저는 제가 장르라고 생각해요.
이반지하. 앞머리와 옆머리를 짧게 치고 뒷머리를 목덜미까지 기른 투블럭 스타일이다. 푸른색 옷 위에 푸른색 잔 체크무늬가 들어간 흰색 남방을 입었다.
성수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이반지하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이반지하
이렇게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는 방식은 어쩌면 오히려 어리석고 오래 걸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하나에 올인해서, 하나의 이름으로 유통했으면 더 빨리 됐을 텐데, 자본주의적 속도의 맥락에선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만 저는 계속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퀴어’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제가 한마디로 정리해서 설명해주길 원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계속 복잡하게 얘기하면서 천천히 습자지에 물들이듯 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요. 사람들은 정답을 원하는데. “트랜스가 뭐야? 남자에서 여자가 되는 거야?” 이럴 때, “응. 그런 거야” 하면 쉽겠죠. 성별에 대한 기존 관념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듣는 사람이 너무 피곤하잖아요. 그러니 유통이 느릴 수밖에 없죠.

2.

성수연
작년 여름에 울산 동구 남목도서관에서 하셨던 퍼포먼스 <정상가족 만들기> 가 궁금해요. 어떤 배경에서 탄생한 작업인지는 대략 알고 있어요. 울산 남목도서관에서 이반지하 님을 강연자로 초청했다가, 혐오세력의 반대에 강연을 취소했다가, 다른 시민들의 항의로 강연 취소를 다시 취소하고, 강연 중 ‘퀴어, 젠더, 동성애’를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고요. 어떤 공연이었나요? 공연 중 별일이 없었는지도 궁금하고요.
이반지하
자기계발 강의가 굉장히 많잖아요. ‘아들 키우는 법’부터 시작해서 주부들 혼내는 강의도 있고. 저는 그것들을 인상 깊게 봤어요. 그들이 쓰는 화법들이 되게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퀴어, 젠더, 동성애’를 언급하지 말라니까 아예 ‘정상 사회 만들기’에 대한 내용으로 자기계발 강의 같은 강연을 하기로 결정하고 어떤 인물을 한 명 상상했어요. 그 강의 자체가 저에게는 일종의 드랙이었죠. 제가 생각한 인물은 어떤 기혼 여성이었어요. 이 사람의 남편은 군인이고, 아들이 하나 있어요. 이 사람도 젊었을 때는,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었어도 어디 가서 말 좀 하는 시끄럽고 기 센 여자였어요. 그런데 남편이 이동할 때마다 계속 쫓아다녀야 해서 자기 기반을 닦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내조를 하며 살다가 남편이 은퇴할 때쯤 ‘정상성 전문 강사’가 된 거예요. 그게 기본 콘셉트였어요. 제가 그 사람이 되어서 강연을 하는 거죠. 그녀가 입을 법한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안경을 쓰고요.
성수연
(웃음) 공연 사진을 봤는데, 그 옷이 그녀의 옷이었군요!
이반지하
네. 제가 하는 모든 예술이 거의 그런데, 알고 봐야 더 재밌어요. ‘아들 중요하다’, ‘정상성 중요하다’ 등 혐오 세력이 봤을 때도 맞는 말만 하는데, 이반지하나 퀴어 사회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볼 땐 더 웃긴, 그런 공연을 만들길 원했어요. 정상성에 대해 어떻게 강연할지 고민하다가, 모두가 사랑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네이버’에 들어가서 ‘정상’의 정의를 검색했어요. 사전에 나오는데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일단 늙어서는 안 되고, 장애가 있으면 안 되고, 비정상 성도착적 행위를 하면 안 돼요. 이 세 가지 틀을 갖고 강의를 했어요. 중간중간 아들 자랑도 하고. 그런 역할을 입은 것이었어요. 수연 님도 배우라서 아시겠지만, 그 순간 저는 그 역할이 돼야만 했어요. 저에게는 정말 드랙 퍼포먼스였던 거죠.
성수연
공연 중에 혐오세력들의 방해는 없었나요?
이반지하
원래 1시간 강연에 30분 질의응답으로 총 1시간 30분의 퍼포먼스를 준비했는데, 밖에서 그 혐오세력 분들이 도서관 문을 차고 폭력 행위를 시작하셨어요. 좀 속상한 건, 이럴 때 관계자들도 경찰들도 그들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말이 통하는 저에게 양해를 구한다는 점이에요. 일찍 끝내달라고 하셔서 총 60분 정도로 공연을 마치긴 했어요. 어쨌든 공연 중에는 별일 없었어요. 강의를 시작하고 문을 다 닫으니까 방음이 잘 되더라고요.
성수연
그들 중 관객으로 와서 앉아 있는 사람은 없었나요? 없었겠죠?
이반지하
있었어요, 있었어요. 놀라웠던 것이, 제가 자기계발 강의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청중들에게 따라 하게 시키고, 동작도 시키고, 대답하게 하는 일을 계속했거든요. 그걸 모두가 너무 잘 따라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안에 혐오세력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강연 마지막쯤 사람들이 저에게 질문할 때, 막 채증하듯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제야 알았어요. 구분할 수가 없었어요. 정말 밝게 웃으면서 재미있게 강연을 듣고 손 들으라고 하면 다 들고 하더라고요. 제 친구는 아마 그들도 목사님이 나오라고 해서 나온 거지, 사실 이반지하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를 수도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성수연
그분들이 그날의 경험으로 인해 어떤 다른 생각을 갖게 되신다면 좋겠지만…
이반지하
그런 건 너무 큰 기대죠. 그냥 그 공간을 그렇게라도 점거했었던 것이 큰 의미죠.
성수연
정말 정말 좋은 퍼포먼스라고 생각해요. 여러 맥락에서.
이반지하
지금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집회 신고를 300명이 했는데, 우리가 살면서 나 개인의 이름을 향해 300명이 집회 신고를 하는 일을 경험하기는 힘들잖아요. 상상하기도 힘들고.
성수연
맞아요.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기 쉽지 않지요.
이반지하
심지어 다른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제가 퀴어이기 때문이었잖아요. 누가 어떤 비이성적인 일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위험한 일을 내가 왜 감당해야 되나 싶었어요. 도서관 측에서 차량을 갖고 숙소로 저를 데리러 오셨는데, 그 순간에도 저는 이미 코스튬을 다 입고 있었어요. 누가 내 적인지 모르겠어서. 그런데 또 정말 감동적이었던 것이, 속으로 많이 떨면서 강의실에 갔는데 맨 앞줄에 제 팬들이 앉아 있는 거예요. 다른 지역에서도 울산까지 와주신 거죠. 그때의 감동은 진짜 잊을 수가 없어요. 게다가 그분들은 집에 돌아갈 때 그 혐오세력들의 온갖 쌍욕을 다 들었어요. 정말 온갖 쌍욕.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저를 보러 와야 한다는 사실이 참… 너무 그렇죠. 지나고 난 지금은 어떤 영웅담처럼 얘기를 하게 되지만 사실은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그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이반지하.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려 무언가를 감싸 쥐듯 하고, 고개를 살짝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다.
성수연
어떤 일을 나중에 듣거나 기록된 글자로 읽으면 그 일을 겪은 사람의 고통이 잘 전해지지 않기도 하잖아요.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실 때의 표정이나 스쳐 가는 눈빛 같은 것들이 글자로는 남지 않으니까요. 그냥 영웅담처럼, 후일담처럼 되기 쉬울 텐데.
이반지하
이반지하 또 웃긴 짓 했네, 정도겠죠.
성수연
누군가가 어떤 상황을 아무리 웃기게 넘겼어도, 고통은 진짜 고통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또 아는 사람들은 늘 알아요. 진짜 알아야 되는 사람들은 모르고. 고통스러운데도 결국 그곳으로 가는 고통이요.
이반지하
맞아요. 그게 저는 중요했어요. 어떤 불의는 계속 일어날 거거든요. 그럴 때 노쇼, 보이콧 등을 하는 것도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좋은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요즘에 하고 싶은 건 직접 가서 반대하는 일이에요. 최근에 제가 주한 미국·영국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파티, 프라이드 리셉션을 다녀왔어요.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수박 티셔츠를 입고요. 퀴어축제 할 때쯤 한국에 있는 서구 대사관들에서 파티를 열곤 하는데 저도 작년부터 초대를 받기 시작했거든요. 올해 초대를 받았을 땐 되게 화가 났고, 못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학살을 그냥 두고 여기에서 LGBT 인권을 수호하는 연설을 하는 그들이 뻔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집에 수박 티셔츠가 있었고, 이걸 입고 거기에 가야지 싶더라고요. <정상가족 만들기>도 그랬어요. ‘퀴어, 동성애, 젠더’를 뺀 강연을 해달라는 말은 사실, 그냥 당신이 스스로 못하겠다고 말하라는 얘기거든요. 정말 그런 강연을 원해서가 아니라, 모양이 안 좋게 됐으니 제가 알아서 빠져주기를 바라는. 저는 이런 방식의 거절에 익숙해요. 이런 경우 신념이 있는 분들 중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니 하지 않겠다는 방식으로 저항하는 분들도 있겠죠. 그런데 그래도 제가 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잖아요.
성수연
정말 그러네요.
이반지하
그렇게 했더니 확실히 의미도 있었어요. 서울에서 하는 행사에 오기 어려운 분들도 많잖아요. 그날 울산이나 인근 지역 페미니스트들과 퀴어 활동가들이 많이 오셨고, 저를 보고 반가워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제가 안 갔으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 가치를 어떻게 산정할 수 있겠어요. 그 만남의 가치를. 그 뙤약볕에 나와서 혐오를 하는 사람들의 열정도 놀라웠어요. 그래서 끔찍하기도 하죠. 혐오를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다니. 하지만 제가 거기에 가지 않았으면 그 사람들의 존재 또한 몰랐겠죠. 그런 감정들이 있다는 사실도. 이 헤테로 사회 혹은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중심으로 갈수록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제가 중심이 아닐 땐 쿨하게, 제법 멋진, 괜찮은 시민들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결국 그들은 제가 주변에 있길 원하죠. 그런데 도서관 같은 곳은 중심이고, 자기들에게 너무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나 보죠. 계속 하는 말이 ‘왜 세금을 쓰냐’는 것이었어요. 그런 말은 항상 흥미로워요. 평생 많이 들어왔던 말이에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는 말들. 특히 책을 통해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게 되면서는 더 많이 느껴요. 중심은 정말 허락하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퀴어 너무 많다고, 퀴어담론 너무 많다고 하면서도 결국 중심은 허락하지 않아.
성수연
중심이 허락되지 않아서,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피투성이가 되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또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은 중심이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이반지하
맞아요. 정확히 그래요. 제가 요즘에 하는 고민이기도 한데,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내 편에게도 저쪽 편에게도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어떤 면에선 굉장히 취약해지는 것 같아요. 점점 나와 다른 사람들 곁에 더 많이 있게 되고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그냥 바라고 있는 거죠.

3.

성수연
여러 장르를 오가며 작업을 하시잖아요. 글을 쓰거나 드로잉 작업을 하실 땐 작업물이 관객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그 안의 공간이 이반지하 님을 자유롭게 만든다고 말씀하셨던 인터뷰3)를 봤어요. 그런데 퍼포먼스의 경우, 관객과 실시간으로 만나며 어떤 에너지를 주고받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애초에 글은 미발표작이 있을 수 있어도, 퍼포먼스는 미발표작이라는 게 성립하지 않고요. 그럴 때 응원과 호의가 채워지는 사랑주머니와 비난과 공격들이 들어가는 고통주머니가 따로인 것 같을 때 없으세요? 사랑받았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성수연. 오른손을 들어 가슴 앞쪽으로 당겨오듯 이야기하고 있다.
이반지하
맞아요. 그게 상쇄되는 게 아니죠.
성수연
그런 상황이 많으셨을 텐데, 그럴 때 마음을 어떻게 다루시나요?
이반지하
어려워요. 제 이름 ‘이반지하’는 이반이고, 반지하에서 예술적 자아가 탄생했다는 뜻이에요. 막 지은 이름인데, 이보다 더 맞는 이름이 없다고 많이 느껴요. 정말 ‘반지하’, 완전히 지하도 아니고 완전히 지상도 아니에요. 누가 볼 땐 큰 출판사에서 책도 내고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도 했으니 충분히 잘 나가는 것 같겠지만, 정말 단순히 퀴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일이 취소되기도 해요. 내 커뮤니티에서도 욕을 먹고, 메인스트림 커뮤니티에서는 절대 끼워주지 않는 이상한 상황도 있고. 어느 쪽에선 너무 유명인이고 어느 쪽에선 완전히 무명씨 듣보잡. 그런 극과 극을 오가는 느낌을 받아요. 사실 예술가 중엔 퀴어이지만 커밍아웃하지 않고 작업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제가 이반지하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하면서 느끼는 건, 뭐가 옳고 뭐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예요. 나보다 더 퀴어적인 작업을 하지만 커밍아웃하지 않은 그 많은 예술가들은 결코 자기 이름에 300명의 반대 시위가 생기는 경험을 하지 않겠구나. 사람이 너무 힘들면 다 원망스러울 때가 있잖아요. 그때도 좀 원망스러웠어요. 이전 세대 예술가 중 퀴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한 사람들이 더 있었더라면 이럴 때 좀 달랐을 텐데. 원래 끝까지 갔을 때야 본색을 드러내는 점이 있거든요, 지금의 제도와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성수연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일은 어떠세요?
이반지하
장르를 넘나들며 제가 해소되는 부분도 있는데, 각 장르는 사실 공고하거든요. 저마다의 관례가 있고.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고 어려워요. 예를 들어 이쪽에선 당연하게 제가 해야 되는 어떤 일이 저쪽에선 또 제 일이 아니거든요. 여러 장르에 걸쳐 있는 애매한 존재로서 혼자라고 느끼기도 해요. 이럴 때 선례로 삼을 수 있는 경험들이 잘 없으니 혼란스럽죠. 취약하고 위태로운 상태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저의 경험도 벌써 저라는 소수의 경험이 되고 있잖아요. 제 주변 친구들도 점점 이 경험에 공감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저도 계속 언어를 개발하고 있어요.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할지. 어쨌든 사회 언어로 말을 해야 사람들이 이해하니까 그걸 쓸 줄 알아야 하는데, 또 내가 사회랑 잘 맞았으면 예술가가 안 됐겠죠. 사회 언어가 안 맞아서 내 언어를 개발하는 사람이 된 건데, 살아남으려면 어쨌든 그 언어를 또 잘 해야 된다는 것. 맨날 헷갈리고 어려워요.
성수연
정말 여러 맥락에서 공감이 되는 말씀이에요. 결국 사회 언어를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점. 굉장히 씁쓸해요. 어쩌면 그게 어떤 사람들의 예술이 메인스트림에서 기록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정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면서 살아가고 계시네요. 어떤 인터뷰4)에서 속도감 있는 작업방식에 대해 이야기해주신 것을 봤어요. 트라우마보다 더 빨리 달리자는 그 말씀이 정말 좋고, 힘이 됐어요.
이반지하
‘나’라는 이 필터가 좋은 상태가 아니라면 세상의 것들을 걸러서 내 언어로 만드는 일을 잘하기 어려우니까, 이 필터를 잘 유지하는 게 우리의 소임이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이 필터를 망가뜨리는 것들이 너무 많죠. 예를 들면 온갖 편견들. 필터를 잘 유지하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잖아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속도였어요. 생각하지 않고 바로 본능적으로 하다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네’라고 알게 되잖아요. 그렇게 자꾸 내 직관을 믿는 연습을 하면 좋은 것 같아요.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나’밖에 못 되잖아요. 나를 정말 철저하게 파고들면 타인한테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나답다’라는 것이 사실 항상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죠. 다수결이 아니니까, 나는.

PART3_이반지하와 세계

1.

성수연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디스크 수술 후 잘 회복하고 계신가요?
이반지하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전보다 좀 빨리 지쳐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아요. 제가 임금 투쟁을 많이 하거든요. 예술가 자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해, 일하고 받는 금액이 너무 적으니까 결국 무리해서 일하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 한 달에 네 번만 해야 될 일을 열 번 하게 되면 당연히 디스크가 터지잖아요. 그런데 무리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 임금투쟁을 늘 해요. 참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제가 어느 이상 받지 않으면 제 뒤에 오는 친구들은 정말 한 푼도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성수연
물가는 급속도로 오르는데, 왜 예술의 값을 책정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울까요? 그러다가도 자꾸 또 스스로 ‘너의 예술이 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를 증명해’ 하게 되고. 그리고 실제로 증명을 요구받는 기분이기도 하고요.
이반지하
맞아요. 그리고 그 증명을 자본주의적으로 해야 되는 거죠. “이번에 지원해줬으니까 다음엔 스스로 일어나야지” (웃음) 일생에 한 번밖에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많잖아요.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도 그렇거든요. 누군가가 기회를 독점할 수 있으니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 그렇다면 기회라는 게 많아져야 되는 거잖아요. 새로운 기관들이 생긴다거나. 다양한 기금 시스템이 있어야 되는데 참 쉽지 않네요.
이반지하와 성수연이 원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이반지하가 오른손으로 테이블에 무언가를 그리며 말하고 있고, 성수연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듣는 자세다. 이들의 뒤로 커다란 검은 스크린과 서가가 위치해 있고, 곳곳에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2.

성수연
저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정말로 세상이 확 변할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놀랐어요. 물론 변한 점도 많지만, 어떤 이야기는 하던 사람들만 계속 하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가끔 친구들과 우리는 결국 ‘한 줌’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하고요.
이반지하
큰 착각을 하셨네요. 그런데 알고 보니 계속 한 줌이었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우세요?
성수연
속상할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반지하
저도 그게 되게 재밌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으면 사실 성장과 팽창이 기본이잖아요. 예를 들어 제 유튜브 채널5) 구독자가 지금 5천 명이 안 되는데, 누군가가 봤을 땐 너무 적은 숫자인 거예요. 성장과 팽창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거죠. 물론 뭔가를 놓치고 있을 수도, 정말 잘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또 한편으로는 ‘그래야만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더 넓은 저변을 가졌으면 좋겠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반지하를 알았으면 좋겠어. 퀴어들만 아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더 많은 유명세가 나아갈 방향이라면, 덜 유명해지는 건 망한 거거든요. 저도 숫자로만 생각하면 올해보다 내년에 더 많은 구독자가 생긴다면 좋겠어요. 그런데 또 한 편으론 ‘이반지하 같은 존재가 대중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잖아요. 우리가 변두리에만 있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로 메인스트림을 지향하고 있는가도 사실 고민해볼 지점인 것 같아요.
성수연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이반지하
요즘 그 생각을 많이 해요. 헤테로가 읽었을 때도 재밌을 만한 것을 써서 관객을 넓히라는 얘기는 자본주의적 팽창과 성장의 관점에선 맞는 말이죠. 그런데 이미 있는 관객들도 소중해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세상은 계속 변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되니까. 그런데 그게 지금 사회의 시각에서는 멈춤이고 퇴행인 거죠. 지금 제 관객들을 지키는 것도 저는 너무 어려워요. 어떨 때는 저에게 팽창을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혹시 핑크 워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성수연
네. 저도 정말 고민하고 있어요. 어떤 것을 지향하며 살아야 할지. 되도록이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안정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봐야겠다 싶다가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래봤자 얼마나 상업적이겠어’ 하는 체념도 들고. 내 취향 중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반지하
메이저한 게 있었나? 내가 뽑은 대통령이 된 적이 있나(웃음).
성수연
(웃음) 그런데 자본주의적 성공을 하지 못하면 정말로 당장 이사 갈 집이 없어 떠돌게 생긴, 이런 상황이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이반지하
그게 예술가라는 직업이 이 사회에서 갖는 위치 같기도 해요. 제가 다른 직업으로 오래 살아보진 않았지만, 직장인들은 꼭 회장님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예술가는 회장님이 되어야 먹고 살아요. 무슨 얘긴지 아시지요? 저 그 생각 진짜 많이 해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매번 뭔가 증명해야 되고, 전에 비해 조금만 못해도 너무 쉽게 주변화되고.
성수연
그런데 사람이, 예술가의 작업이 내는 족족 희대의 명작이기는 어렵잖아요.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반지하
사실 정말 많은 운과 사회적 상황 등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만 하는 것이잖아요.
성수연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소위 메인스트림의 작업을 하는 것도 어렵다면, 살아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계속 고민하게 돼요. 아직 막연하지만.
이반지하
저도 고민하다가 결국 생각해낸 게 ‘문화혜택비’ 개념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경제 체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성수연
언어가 진짜 중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후원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랑 문화혜택비를 받는다고 생각할 때 완전히 관점이 달라지더라고요. 바꿔서 후원을 한다고 생각할 때랑 문화혜택비를 낸다고 생각할 때도요.
이반지하
미술 쪽엔 굿즈가 있잖아요. 먹고 살려면 굿즈를 만들어야 되는데, 우리는 프로 굿즈 디자이너가 아니죠. 후원에 대한 보상이 꼭 그런 형태로 있어야 하는지 질문하게 됐어요. 이런 방식에 설득된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도 저는 문화혜택비를 보내주신 분들 덕분에 올해도 책을 낼 수 있었어요. 그런 것이 있으면 모두가 공공기금에 기대지 않아도 되고, 모두가 매번 상업적인 예술을 할 필요도 없겠죠. 물론 많은 설득이 필요하지요.
성수연
어떤 예술가에게 그 사람 자체를 후원하는 후원자가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기도 하고, 여러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책에서 읽었던 것 같아요. 부럽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 어떤 업계에서는 스폰서 관련하여 안 좋은 이야기들도 많잖아요.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또 저는 문화혜택비라는 개념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일이고, 연대가 되기도 하는 것 같고.
이반지하
맞아요. 막대한 후원을 해주는 한 사람에게 크게 기대지 않아도 되고, 그 사람이 허락하는 예술을 해야 할 필요도 없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기도 하고, 저한테는 그게 존재적 믿음을 전해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이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후원’이라는 말 대신 이 말을 쓰는 걸 많이 봤거든요. “제가 문화혜택비를 얼마 낼게요” 이런 식의 말이요. 제가 개발한 이 단어를 가지고. 그게 좀 뿌듯해요. 대단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당신의 존재가 나를 오늘 웃게 했으니 내가 이 정도 지원한다는 마음. 그게 큰 금액이 아니어도, 정말 의미가 커요.
이반지하와 성수연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유리창 밖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이반지하는 고개를 위로 든 채 왼손을 펼쳐 턱 끝을 지지하고 있고, 성수연은 오른손등으로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다. 유리창 바깥의 풍성한 푸른 잎들과 보랏빛 꽃들, 파란색 울타리와 초록색의 테이블, 의자 등이 반사되어 이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3.

성수연
곧 이반지하 님의 세 번째 책6)이 나오겠네요. 저는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두 권 다 정말 소중히 읽었습니다. 누군가가 어떻게 읽었는지 물었을 때, 너무 좋아서 먹듯이 읽었고, 또 냄새나는 책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이반지하
감사하네요. 그런 글이 돼서 다행이네요, 누군가한테. 냄새난다는 건 어떤 거예요? 재밌는 표현이네요.
성수연
설명을 잘 못 하겠는데, 최승자 시인의 어떤 시를 읽고 딱 한 번 냄새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좋은 의미로 정말 이상한 감각이었어요. 책 안에 피맛이 나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있어서였을지도 몰라요. 저도 아는 맛이거든요. 혹은 고통과 유머의 낙차가 커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웃기고 또 정말 고통스러운데 그 양쪽을 왔다 갔다 같이 뛰느라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도 같고. 또 <정상가족 만들기> >퍼포먼스 때 겪으신 상황처럼, 팬들의 사랑과 누군가의 혐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이반지하
닳아요.
성수연
네. 지치실 것 같아요. 책에서 그런 여러 감각들이 정말 잘 전해졌어요.
이반지하
드러났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아마 오래는 못 살 것 같아요.
성수연
안 돼요.
이반지하
대단한 자살 예고가 아니고요, 그냥 많이 닳게 되는 것 같아요. 제 고통이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 이렇게 계속 너덜너덜해지겠구나 싶어요. 지금 세 번째 책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너무 많은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글이어서 정신도 없고, 너덜너덜한 상황이에요. 책을 낼 때마다 ‘이런 이야기가 공개되면 난 어떻게 살아야 되지?’ 싶은 부분이 있거든요.
성수연
어떤 맥락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그 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들이 달라질까 봐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아니면 그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 스스로 감당이 안 될까 봐 걱정하시는 건지요.
이반지하
둘 다인 것 같아요. 내가 이야기를 꺼냈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 이야기를 소화하지는 않잖아요. 내놓는 순간 또 도륙당하는 것이 예술이기도 하고, 물론 그래서 재밌는 일이지만 많이 두려워요. 예를 들어서 어떤 이야기는 내가 꺼내긴 했지만 사람들이 가십으로 떠들길 원치 않을 때도 있거든요. 그걸 막을 순 없지만.
성수연
그러게요. 오늘 오면서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반지하 님께서 저에 대해 아시는 것보다 제가 이반지하 님에 대해 가진 정보가 훨씬 많은데, 제가 이반지하 님의 어떤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고 해서 마치 나에게 그 이야기를 사적으로 나눠주신 것처럼,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다시 꺼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이반지하
이런 생각까지 하는 분들은 정말 드물어요. 책은 정말 큰 유통 산업 안에 있고, 그것의 음과 양이 있어요. 정말 누구 손에 갈지 모르고, 누가 어떻게 이 책을 요약할지도 모르고, 아시겠지만 그 순간이 찾아와야 알게 되거든요.
성수연
다른 분들도 이미 많이 얘기하셨겠지만, 저는 이반지하 님께서 ‘생존자’라고 자꾸 말해주시는 게 많은 힘이 돼요. 저를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기분이 또 달라졌었어요.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의 첫 글의 제목도 ‘생존자’잖아요.
이반지하
저는 이런 얘기를 듣는 게 감사해요. 그런 순간 많잖아요. 누구를 위해서 이걸 하고 있나. 지금 새로운 책 마무리하면서도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야 할 이유가 있나 싶고, 절망하기도 하면서 만들고 있는데 이렇게 마음을 나눠주실 때 감사해요, 진짜.
성수연
저도 편한 친구들에게는 장난을 많이 쳐서, 제 작업을 보고 누군가가 “그 부분에서 정말 위로받았어” 같은 말을 하면, “너 위로하려고 만든 거 아닌데?” 이러기도 했는데(웃음).
이반지하
저도 그래요. “그냥 나를 위해서 쓴 건데? 니 맥락 아닌데?” 그러면서(웃음).
성수연
고맙고 멋쩍어서 괜히 더 그랬는데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앞으로도 더 내가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왜 들려주고자 하는지를 더 많이 고민하고 싶어졌고요.
이반지하
아까 우리 한 줌 이야기했던 것과도 이어지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 작업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완수된다는 것. 빌보드 차트 1위 안 해도 되고. 생각해보면 내가 빌보드 1위 곡을 좋아한 적도 없는데(웃음). 나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지 않았는데.
성수연
어떤 존재가 삶 전체를 걸고 계속 그 사람만의 예술로 사회에 말을 건네는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할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더 많이 생각해요.
이반지하
같이 버텨주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어요. 이제는 제 팬들의 이름(감태)까지 있잖아요. 혼자인 순간들도 많고, 사랑주머니와 고통주머니가 따로 있고, 여전히 월세 걱정을 하느라 괴롭고,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살 만한 것 같기도 하고요.
성수연
그래서 저는 이반지하가 국보가 되어 천만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반지하
감사합니다. 그 꿈 이루어지기를.
성수연과 이반지하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성수연은 오른손을 펼쳐 얼굴 옆쪽으로 들어올려 웃으며 이야기하고, 이반지하는 양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웃고 있다.

에필로그 - 질문 주고받기

성수연
너는 정말 웃기잖아. 그런 네가 최근에 제일 많이 진심으로 웃은 게 언제야?
이반지하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슬퍼?
성수연
책을 통해 너의 어떤 이야기를 꺼낸 후, 그 일을 전보다는 조금 더 다룰 수 있게 됐어?
이반지하
너라면 다룰 수 있을 것 같아?
성수연
지금 너한테 제일 필요한 게 뭐야?
이반지하
너한테 제일 필요한 게 뭐야?
성수연
혹시 다음 앨범 계획을 갖고 있어?
이반지하
내가 다음 앨범을 낼 수 있을까? 내게 다음이란 게 매번 있을까?
성수연
우리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이반지하
작품으로 보게 될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1. <READ MY LIPS - 아이방지흐 에라이 퀴어>(2017).
  2. www.soyoonkim.com
  3. 「이반지하를 만나다 | 불온하고 탱탱하신 우리 아버지 | 매거진 K-Arts」, 『한국예술종합학교 K-Arts TV』, 2023.9.20., https://youtu.be/TreG65CR7_s?si=-diqbc6VMuu0EwgU
  4. 위의 영상.
  5. https://youtube.com/@ibanjiha?si=lcbQPdSdNuGpS9sf
  6. 창비, 2024.7.26 출간 예정.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성수연(파이리)

성수연(파이리) 본지 편집위원
배우, 창작자. 다양한 형태의 연극작업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ooyeonsung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