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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_여기가 아닌 어딘가.wav

[이 편지는 연극에서 시작되어] 이지수 X 목소

목소, 이지수

제253호

2024.05.16

[이 편지는 연극에서 시작되어]는 두 편지글로 이루어진 대화입니다.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그 누군가로부터 도착한 답장을 함께 싣습니다.

기사의 제목인 “***_***.wav”는 두 필자가 제목으로 선택한 말들을 나란히 놓고, 사운드 파일의 확장자를 붙인 형태입니다. 서로는 서로가 어떤 말들을 선택했는지 모르고, 기사의 제목은 편집부가 그 말들을 수신할 때 완성됩니다.

지수에게

우리가 5월에 공연을 엮게 될 길을 함께 걷고 돌아와 편지를 씁니다. 눈 안에 풀과 나무들의 잔상이 아직 선연히 남아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좀 어려운 계절을 지나고 있던 참인데, 구불구불 엉킨 채 뻗어난 공원의 길들이 덥석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발자국에 의해 생겨난 길들과 더는 어디로도 연결이 되지 않는 길들도 말이죠. 아직 무엇도 발생하지 않은 공간에 지수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가만히 겹쳐보다 보니, 그곳에 놓인 자연을 오래 귀로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수로부터 자연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글과 목소리로 몇 번이나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 지수에게 연극과 극장은 어떤 의미일지, 또 지수의 자연과는 어디서 만나고 어떻게 갈라지는 것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소 맥락은 다르지만 지수도 저에게 늘 극장에 있는 기분에 대해 물었었지요. 적응을 마친 루틴과 엄격한 일정이 주는 어떠한 안락을 답하고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잠시섬 연극제 라인업 설명에 실려 있었던 지수의 소개말 중 “역마살이 있어 도망갈 궁리를 자주 합니다”라는 표현에 크게 공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누구보다 떠날 궁리로 가득한 제가 긴 시간 극장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등질적인 장소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짧은 생으로 이토록이나 많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갈 수 있다니요. 그러한 연유로 외려 지극히 외로웠던 날들도 있었지만, 사라져 버릴 것들에 잠시 정박해 있던 소리의 날개를 풀고 다음 세계로 떠나는 일은 여전히 매혹적입니다.

세로로 긴 사진. 협궤열차가 다니던 폐철도가 곧고 길게 뻗어 있다. 발목 높이를 넘어 자란 수풀이 철도를 덮고 있고 한쪽 옆으로는 가지가 가느다란 나무들이 서 있다. 다른 쪽 옆으로는 철도와 나란히 거대한 지하철 교각이 뻗어 있고, 하늘에는 옅은 회색빛 구름이 깔려 있다.

올봄은 타국에서 맞았습니다. 겨울에 출발했는데, 돌아오니 봄이 되어 있었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1)라는 저 유명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꼬박 한나절을 보내고 극장에서 나설 때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있음을 깨닫곤 합니다. 그럴 때면 긴 꿈에서 깬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요. 연극이란 꿈들의 연쇄를 여행이라 나지막이 불러 봅니다. 도망갈 궁리라는 것은 제게 살 궁리에 다름 아닌지도 모릅니다. 다만 현재를 낯설게 느끼기 위해 멀리 걷는 것, ‘안’에 쉬이 잠기지 않는 눈으로 매 순간을 가능한 한 ‘더’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동일한 소개에서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프로 산책러”라는 표현을 또한 썼었지요. “그저 걸어 다니는 사람일 뿐”이었던 한 시인을 따라 저도 당돌하게 ‘손가락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제게 작업이란 발을 디딜 곳을 살피며 마음을 들여 발자국을 배치하는 일이자,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우연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보행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제는 지수가 찍어준 <당신의 러브>2) 뮤직 비디오를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소리가 담기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뒤의 호흡과 발걸음이 손을 대면 만질 수 있을 듯 생생했습니다. 박동하는 시선이 음악을 멀리 데려가고 있었어요.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늘 그을려 있다 짐짓 놀렸지만 때로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지수에게서는, 볕과 그늘을 다니는 사람에게서 맡을 수 있는 밝고 바삭한 냄새가 납니다. 봄의 복판에서 곧 다시 만나 함께 길의 너머를 기웃거리면서 더 많은 꿈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2024년 4월, 목소 우정인 드림





목소에게

실로 오랜만에 편지를 받았습니다. 사심 없는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 참 설렜습니다. 목소를 극장과 극장 주변에서 마주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목소는 동료들과 어울릴 때, 항상 주변 사람들을 견인해준다 느꼈습니다. 저에게도 그러셨죠. 그러다가 한 번씩 저에게 볕에 그을렸다고 놀려줄 때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너무 해맑게 말씀하시니 뭐라 대꾸도 못 하겠어요. 사실 저는 사계절 피부색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며칠 전, 나무와 들풀이 무성한 공원을 함께 걸었죠. 구불구불하고 정돈되지 않은 길이 불편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을 텐데요. 목소는 흐릿한 흙길을 걸으며 계속 무언가를 찾고 탐색했고, 어떤 풍경을 보고 찬미하기도 했어요. 볼 것도 많고, 들리는 것도 많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내심 마음속으로는 안도했어요. 극장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수려한 자연이 펼쳐진 곳도 아니라서요. 거대한 지하철 교각 밑을 걷고 나서, 그곳에서 처음 느꼈던 감각에 대해 구구절절 말씀드렸더니, ‘사원’이라는 힌트도 주셨어요. 희미한 조각들이 한번에 정리되는 통쾌함이 있었어요. 공원 수풀 속에는 폐철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오래전 수인선 협궤열차였는데 조금 방치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양옆으로는 세련되고 큰 쇼핑상가가 즐비합니다. 녹슨 철도가 사라지지 않은 게 다행이죠. 녹슨 폐철도를 걸어보았습니다. 저는 철도 마디마디가 시간 그래프처럼 보였습니다. 발 디디고 서 있는 곳이 현재, 뒤를 돌아보면 과거, 앞을 내다보면 알 수 없는 미래인 것인 것처럼요.

세로로 긴 영상.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는 영상 위쪽 1/3 지점에서 위로 뻗어 올라가 아래쪽 일부만 드러나 있는 모습이다. 수풀 사이사이 해가 비추는 곳과 그림자가 드리운 곳이 있다. 바람 소리가 들린다.

목소가 여행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긴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대화를 나눴던 적도 있었지요. 잠시였지만 목소에게서 정서적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겨울에 타국에서 오래 지내는 기분은 어떠한가요? 이곳을 설국처럼 느끼셨다면, 아마도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가 있는 동남아나 더운 나라였을까요? 목소에게 여행담을 듣고 싶어요. 떠나기 전 어떤 기대를 품고, 그곳에선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리고 돌아와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회상하는지도요.
여행담이 지극히 사적이지만은, 여행의 방식도 점차 성숙해지고 싶달까요.
같은 시간에 다른 계절과 풍경을 눈에 담고 있다고 상상하면,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항상 도표처럼 수치화하게 되는 버릇이 있습니다. 시간이 유한하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 속에 무언가를 건져 올릴지 계속해서 되묻게 됩니다.
낯선 곳에 대한 갈망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어쩌면, 저에게 향수병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끔 어디로 귀향해야 하는지 자문해 볼 때가 있습니다. 타향살이를 시작한 지도 오래전 일이지만 거처를 옮기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 “어떤 곳에 떨어지더라도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저항감도 없고, 기대치를 퍽 낮추어 정신적으로 만족을 가져다주는 듯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제 정체성에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웃픕니다.
극장의 시간과 낯선 곳에서 방랑하는 시간이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가고 있다는 것, 현재의 시간성을 골똘히 감각할 수밖에 없음, 계속 마주치는 우연에 대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쇄신되어감, 그리고는 다시 일상으로 귀환’. 목소가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낯선 곳을 걷고, 떠나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잘 안착하고 머무르기’ 위한 방편 같아 보입니다. 일상에 틈입해 쌓인 관성과 편견을 무용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마도, 연극생활을 지속하는 일이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찾아가는 여행 같다고 느껴집니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과 떠난 곳에서, 잠시 서서 뒤를 바라보며 기억하는 일 말입니다.
극장 주변이 아니라 막다른 길에서 동료들을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뒷골목이나 산 중턱에서, 혹은 지방의 깊숙한 게스트하우스 같은 데서 마주쳤을 때 희한한 동질감과 그 잔상이 참 오래갑니다. 다시 어떤 생동감을 길어와 극장과 극장 주변에 흩뿌려놓을 것을 생각하면요. 설명하기 힘든 우연이지요. 이유도 알 수 없고요. 어떤 장소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요. <당신의 러브>를 공연하셨을 때를 회상해보면, 주변이 편안하고 정감 가는 골목들이 많은 동네였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오래된 옛 골목과 건물이 있는 장소를 목소와 함께 걸으며 재밌는 궁리를 해보고 싶습니다.
덕분에 좋은 기억을 많이 꺼내 보았어요. 고맙습니다. 목소. 부디, 안온한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2024년 5월,
지수 드림


[사진·영상: 필자 제공]

  1. 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설국』, 민음사, 2009.
  2. 강하늘, 목소, 배소현, 신지원 구성 및 출연,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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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

목소
듣기의 연습을 통해 ‘들리는 것’과 ‘듣는 것’에 대한 질문을 수행 중이다. <앨리스 인 베드>, <홍평국전>,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스푸트니크> 등에 사운드 디자인으로 참여했다.
인스타그램 @morceauxx

이지수

이지수
배우와 창작을 합니다.
공연과 무대 주변 사람들의 사진을 남기기도 합니다.
도망갈 궁리를 자주 하는 만큼, 살 궁리도 자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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