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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만나고 있어요

배우 이수미

부새롬

제130호

2017.12.21

요즘에 안 바쁘세요?
수미
공연도 하고 있고 이번 주는 대학원 기말고사 기간이에요.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계세요?
수미
네, 올해 공연영상학과에 신입생으로 들어갔어요.
와, 정말 늦깎이 대학원생이신데, 어떻게 가시게 됐어요?
수미
제가 ‘목화’를 딱 40살이 되던 해에 졸업을 했거든요. 98년에 들어가서 2013년에 나왔어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어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 대학원에 가서 미리 준비를 해두면, 기회가 생겼을 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일반 대학으로 편입을 하기에는 학비가 너무 많이 드니까, 방통대를 가서 학사를 받고 대학원을 졸업해도 50살이니까 늦지 않겠다, 그랬죠. 자다가 문득 그랬어요. (웃음)
또 하나 큰 이유가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시작해서 대학 때까지 연극을 너무 재밌게 했거든요. 그런데 극단을 들어가면서부터 재밌지 않았어요. 들어간 날부터 나오고 싶었거든요. 극단에 있었던 15년을 거의 매일 울었어요. (웃음) 극단을 나오고 보니까 목화에서 배운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걸 배우기 전인)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럴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 내가 학생이 되는 방법이겠다, 생각을 했어요. 혼자서 공부를 해보려고 했는데 한계가 있어서, 제도권에 들어가버리면 좀더 타이트하게 공부를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그렇게 해서 방통대를 가고 대학원을 가신 거군요.
수미
대학원 입학 시험에서는 직전 학부의 성적이 중요하다고 해서, 1년에 작품 두 개 하고 나머지 시간은 계속 중간고사, 기말고사 준비했어요. 공연 하나 끝내놓고 화장실, 방만 왔다갔다 하면서 시험 공부를 했죠. 그렇게 졸업을 하고 대학원 시험을 보는데, 얼마나 떨었는지 면접 때 인사를 하고 나왔는지 아닌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어요. (웃음)
정말 멋있으시네요. 보통 사람들 같으면 너무 늦은 거 아냐, 라고 엄두도 안낼 텐데요.
수미
저도 그랬는데, 어느 순간 용기가 나더라고요. 학자금 대출이라는 제도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갚을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주위에서는 니가 거기 가서 뭐하냐, 말리잖아요. 저는 가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이런 생각도 있었죠. 제가 목화에서 오랫동안 연극을 하면서 생긴 볼록한 부분도 있을 꺼고 오목한 부분도 있을 텐데, 학교라는 곳에 가서 그런 것들을 털어내기도 하고 새로운 걸 공급받기도 하고 싶었어요.
다녀보시니까 기대했던 바가 충족이 좀 되시던가요?
수미
학교 시스템이나 시설, 그런 것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소박한데 수업을 통해서 얻는 게 있죠. 뮤지컬 수업을 들었어요. 목화에서는 맨날 창, 민요 같은 소리를 했고, 오태석 선생님은 뮤지컬하면 배우 아니라고, 완전 취급도 안 하셨거든요. 오히려 모르고 싫어하지 말고 한번 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교수님이 목소리를 들어보시고 학생한테 맞는 노래를 주시는데, 저한테 <캣츠>의 ‘메모리’를 주시더라고요. 한 학기 동안 꾸물꾸물 연습을 해서 그저께 발표회를 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떨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원래 공연할 때도 떠는 스타일이긴 한데, 이건 가슴이 떨리는 정도가 아니라 팔다리가 굳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했어요. 야, 너처럼 노래가 잘 안되고, 목소리가 막 나가지도 않는 고양이도 있을 수 있지 않니? 그리고 ‘메모리’라는 노래는 인생이 다 저물어가는, 죽어가는 고양이가 자꾸 내일이 밝아온다고, 희망이 있다고, 다 행복할 거라고 하는데, 거기에 감동이 있었어요. 그 마음을 갖고 하면 되지 않니? 그렇게 최면을 걸었어요. 평생 처음 그렇게 떨어보면서 나 자신하고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제가 목화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나 자신이 없었다는 거예요. 눈 뜨면 10시에 극장 가고, 10시 40분에 끝나면 집에 가서 자고, 또 눈 뜨면 연습실, 40살까지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없는 줄도 몰랐어요.<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그 때 읽었는데, 제가 크리스찬인데 스님이 쓰신 그 책을 보고 (웃음) 불현듯 여기서 멈추자, 용기가 나더라고요. 나를 만날 수 없었다는 걸, 목화를 나와서 다른 작품을 하면서 알았어요. 무대에는 나라는 사람이 드러나야 되는데, 목화에서의 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짜여진 연출님의 퍼즐 중의 한 조각이었구나,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 몇 년 동안 계속, 무대에서 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난 가을에 <햄릿릿햄>이라는 모노드라마를 했었는데, 처음으로 제 목소리로 연기한 거 같아요. 여태까지는 늘 그 역할에 맞는 호흡을 찾고 거기에 맞게 목소리가 딸려 나왔는데 그냥 ‘나’의 목소리로 처음 연기를 한 거죠. 연기할 때 이수미 라는 사람의 호흡을 더 (찾아 보자), 너의 존재 만으로도 무대에서 빛날 수 있어, 그걸 믿고 한번 가보면 어떨까, 그게 요 몇 년간 제 화두예요.

오태석 선생님처럼 확고한 스타일과 미학이 있으신 연출이 이끄는 극단, 그리고 극단 규모도 크잖아요, 그런 곳에 오래 있으시다 보면 배우로서 좀 답답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수미
저는 손가락을 요만큼 올리고 그 다음에 이렇게 나가고, 하나하나 다 치밀하게 계산을 한 다음에 몸에 익혀서, 마치 계산을 안 한 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연기를 계속 추구해왔어요. 그러다 26살에 목화를 딱 들어갔는데, 리딩을 한두 번 하더니 갑자기 너 저쪽에서 두 바퀴 돌고 나갔다가 이쪽으로 들어와, 막 정신 없이 디렉션이 들어오는 거예요. 난 한 발짝 떼는 것도 다 계산을 해야 되는데, 목화에 잘못 들어온 거 아닌가? 속으로 그러고 집에 가서 막 울었어요. 몇 년이 걸려서야 순서가 뒤바뀌었을 뿐이다, 먼저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여놓고 그 다음에 디테일을 찾으면 된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웃음) 사실 전 목화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학교 교수님이 너 목화에 가라, 그래가지고 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15년을 계셨어요? 좀 해보고 나가실 수도 있었잖아요.
수미
일단 역할을 주시니까 그걸 해내기가 바빴던 것 같아요. 처음 들어가서 6개월 동안은 대사 두 마디 정도 나오는 역을 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너무 후배인데 좋은 역들을 맡은 거예요. 그리고 이번까지만 하고 그만둬야지, 하면 꼭 바로 그 다음 스케줄이 생기는 거예요. 선배님들이 우스개 소리로 오선생님은 애들이 쉬면 그만두기 때문에 쉬지 않게 한다, 그랬어요. 속으로 에이, 설마, 그랬는데 정말이었던 거죠. (웃음) 목화 연극은 약속이 많기 때문에 한 명이 빠지면 연습을 많이 해야 되니까, 미안지심이 있어서. (웃음)
지금 빠지면 피해를 준다, 라는 생각이 들죠.
수미
성격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니가 힘들어서 여기서 그만두면 밖에 나가서도 똑같이 적응 못 할 거야. 그러면서 울면서 견딘 거예요. 한 10년 힘들다가 역할도 계속 잘 맡고 배우들하고도 잘 지내고 목화도 이전보다는 경제적으로 좀 윤택해지고, 너무 평화로울 때 그만뒀어요. 만약 지금 그만 안 두면 60때까지 여기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어요.
학교 얘기를 하다가 목화에 들어갔다가 나온 얘기까지 갔는데요. 학교의 선생님이 선배님보다 더 어린 경우도 있지 않아요?
수미
이번 학기에 만난 선생님들은 다 어리시더라고요.
어떠셨어요? 부끄럽거나 그렇지 않으셨어요?
수미
부끄러운 마음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배울까, 들어가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어요. 고비는 있었죠. 영상 연기 수업에서 연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연극했던 습관이 나온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말씀은 안 드렸지만 제가 중견 방송 연기자를 4년 정도 레슨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콘티도 볼 줄 알고 카메라 연기도 두루뭉술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연극해서 그렇다, 라는 말씀을 자꾸 하시니까, 내가 연극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석을 하고 연기를 하는 건데 오해가 많으시구나, 했었죠. 물론 다른 학생들한테 샘플 개념으로 얘기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솔직히 그 수업에 가기가 싫었죠. (웃음)
동기들도 되게 어릴 텐데 잘 지내세요?
수미
동기들이 저를 많이 챙겨줘요. 무조건 예쁘게 봐주고. 애 다루듯이. (웃음) 그 친구들한테 배워요. 저는 선배들을 어려워하고 격식 차려주는 거에 익숙한 세대인데, 그 친구들이 절 애 다루듯 하는 게 되게 따뜻하고 좋더라고요. 나도 선배님들한테 저렇게 말도 먼저 걸고 애교도 막 부리고 싶다, 그래요.
자기 생계도 책임지지 못하는 배우가 학자금 대출 받아서 학교에 들어온 게 참 철이 없지만, 이렇게 사람이 깨어지는구나, 내가 어떻게 눈을 여느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있느냐, 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이제 한 학기 하셨으면 논문까지 쓰시려면 한참 남았네요. 파이팅입니다. (웃음)

처음 뵀지만 조용한 편이신 거 같아요.
수미
평소에 정말 그래요. 그래서 연극하면서 많이 부딪혔어요. 고등학교 때 처음 연극 시작했을 때도, 무대에서 조명 받고 사람들 박수 받고 그런 걸 좋아했던 게 아니라, 대본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 안의 세계, 인물을 상상하고 만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프로세계에 나오니까 성격이 다 센 사람들 서른 명이 아침부터 밤까지, 몇 년을 같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거 진짜 나랑 안 맞다, 그래서 매일 운 것도 있었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혼자 하는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너무 반대 쪽에 와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근데 이런 성향 때문에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조용히 혼자 놀기를 잘 하니까 인물을 볼 때도 계속 더 들여다보려고 하는 게 있죠.
갖고 있는 성향 자체가 내향적이신데 고등학교 때 연극반은 어떻게 들어가시게 됐어요?
수미
고등학교 때 만들고 싶은 특별활동부 있으면 적어내라고 하더라고요. 보니까 우리 학교에 연극부가 없어서 써냈는데 쓴 사람이 들어가야 된대요. (웃음) 처음엔 연극감상부였어요. 연극 보고 감상문 써내는 거니까 별 부담이 없었는데, 2학년이 되고, 연극반 활동도 왕성해졌고 25주년 축제가 겹치면서 공연을 하게 됐죠. <넌센스>를 했는데 작품을 분석하고 무대에서 배역을 해내고, 이런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얌전한 사람이 나 배우할래,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수미
“이 역할 누가 할래?” 그러면 친구들이 서로 니가 해, 누가 해, 막 그러면서 역할이 정해졌어요. (웃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런 거 같아요. 오선생님이 중학교, 고등학교, 최소한 대학교를 지나면서 다 각자의 다락방에 있는 동화를 정리하는 시간이 온대요. 근데 너라는 애는 그 다락방을 계속 갖고 사는 애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무대에서 저는 욕쟁이 할머니, 국가적인 대무(당), 담배 막 피는 걸걸한 창녀, 그런 엄청 센 역을 많이 했어요. 실제 제 삶에서 그렇게 살라 그러면 감당을 못해낼 성격이에요. 부딪힘을 너무 싫어하니까. 근데 무대에서는 모든 게 약속이잖아요. 그걸 믿고 하면 되죠. “아, 내가 이런 거 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 한 후배 배우가 “언니는 딱 믿기만 하면 그냥 간다”고 그래요. 현실에서는 감당 못할 무게나 크기가 무대에서는 너무나 아름다운 약속들로 이루어지고, 또 내가 어떤 나쁜 역할을 해도, 어떤 강한 역할을 해도 무대는 다 선하잖아요. 실제 삶에서 그렇게 세게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여기 있는 컵이 깨질 수도 있고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요. 무대에선 그런 (예상치 못할)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나를 편안하게 숨쉬게 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줬던 거 같아요.
내향적인 배우들이 좀 힘들 꺼 같아요. 하루 종일 사람들이랑 복닥거리고, 스탭이 오면 말이라도 살갑게 걸어야 될 꺼 같고, 끝나고 술자리 있으면 또 거기서 재밌게 해야될 꺼 같고. 그런 걸 잘 하는 배우들이 많으니까 그럴 에너지가 안 남아있는 자신이 배우로서 뭔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꺼 같아요.
수미
요즘 저한테 갖고 있는 질문이 있는데요, 왜 이렇게 나는 공연이 끝나면 힘들지? 전 무대에서 다 하는 사람인 거 같아요. 무대에서 내려오면 정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가 싫어요. 외국 공연을 가도 공연 끝나면 숙소에 가서 음악이나 듣고, 조용히 멍 때리면서 차나 한잔 마시고 아무 것도 안 해요. 근데 사람들은 술 마시러 가고 어디 구경하러 가고 그러잖아요. 아주 어릴 때는 저 사람들은 왜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지? 불만이 많았어요. 근데 나이가 들면서 그것도 다 예뻐 보이고 그냥 내가 이렇구나, 그래요. 어떻게 해야 안 힘들까, 방법을 찾고 싶어요.
선배님보다 더 선배님이랑 얘기를 나눠보셔야겠는데요. (웃음)
수미
선배님한테 여쭤 보면 “힘 빼야 돼.” 많이 그러시잖아요. 그러려면 그런 역을 또 맡아야 되는 거 같아요.

되게 얌전한 사람인데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사고 치는 사람있잖아요. 그런 스타일이신 거 같아요. 어머, 쟤가 배우를 한다고? 학교를 갔다고? 그런 스타일. (웃음)
수미
맞아요. 마음이 서기까지 오래 걸려서 그렇지, 딱 서면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무서운 사람. (웃음) 제일 후회되시는 일은 뭘까요?
수미
나보다 더 연극을 더 사랑했던 거. 지금은 나를 사랑하고 연극을 하고 싶어요. 맨날 추레한 연습복 있고 먼지구덩이 연습실에서 뒹굴다가 엄청나게 화려한 색의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가잖아요. 거기에 모든 게 맞춰져 있었어요. 연습이 제일 먼저고, 밥 먹는 것도 두 번째, 세 번째 였고,일상을 위한 시간이 없었죠. 이렇게 누굴 만나도 늘 머리 속에 작품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영혼은 딴 데 가있었고요. 내 영혼이 온전히 같이 있는 곳은 연습실, 무대 밖에 없었어요. 그게 좀 (후회되죠.)
후회되신다고 하지만 연극하려는 사람은 이 얘기 들으면 와, 멋있다, 저렇게 온 몸을 받쳐야 돼, 그럴 거예요. (웃음)
수미
후회되는 일에 목화를 얘기하지 않은 건, 목화에 있었기 때문에 현재 나한테 켜켜이 쌓여서 형성된 것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대가를 지불한 만큼 나한테 남아있는 것들을 절대 부정할 수가 없죠. 저 나올 때 오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수미야 니가 목화에서 배운 기초적인 연극적인 방법론이 절대 잘 못 배운 게 아니다, 이 안에서 계속 있으면서 그 방법론을 지켜주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너라는 배우가 나가서 더 넓게 이 방법론을 확장시키는 것도 선생님한테는 더 큰 보람이 될 수 있다.” 그 말씀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오선생님이 괴팍한 면도 있으시고 너무 힘들게도 하셨지만 어마어마한 열정이나 집요함을 갖고 계시거든요. 그거 때문에 제가 묵묵히 있었던 것도 있어요. 제가 목화에 대해 얘기한 게 후회로만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어떻게 그렇겠어요? 선배님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이 있었으니까 지금이 있는 거겠죠. 혹시 덧붙이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수미
오늘 얘기하면서, 뭔지 모르겠는데 계속 눈가가 촉촉해지고, 시큰해지는 게 있어요. 난 무대에서 죽을 꺼야, 70이 넘은 할머니가 돼서도 영국의 멋있는 배우들처럼 무대에 설 꺼야, 했던 한 아이가 어느 날 보니까 가난한 어른이 돼있더라고요. 그 삶의 무게가 아직도 있지만, 같이 그런 길을 걷고 있는 분이 앞에 앉아 있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잘 살아왔다고, 잘 해왔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서. 연말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연말이니까 독자분들에게 크리스마스 겸 새해 인사 해주세요.
수미
하뉴 유즈루라고 좋아하는 운동선수가 있어요. 94년생 일본 피켜스케이터인데 “어제의 내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오늘의 내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오늘 누군가와 웃음을 나눌 수 있다면 어제의 내가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이수미한테 연극이란?
수미
나보다도 더 사랑했고, 그래서 떨어지고 싶었고, 떨어져봤고 그러나 떨어진 자리에도 연극은 있더라.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이수미(배우)

대표작
<여보 나도 할말있어> <2017 애국가> <세 자매> <사랑별곡> <반신>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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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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